본문 전도서 8:1-17
찬송가 429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오늘 본문은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을 합니다. 1절 상반절입니다.
누가 지혜자와 같으며 누가 사물의 이치를 아는 자이냐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가? 누가 사물의 이치를 깨우쳤는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답은 독특합니다. 1절 하반절입니다.
사람의 지혜는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의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누가 지혜로운 사람이냐?라고 묻는데, 지혜는 사람의 안색을 밝게 하여 찡그린 얼굴을 바꾸어 준다고 대답을 합니다. 지혜자는 지혜라는 것이 단호한 인상을 웃음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대답할 뿐이지 누가 지혜로운 사람인지 알려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충 느낌은 알겠지만 지혜가 무엇인지는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대신 그가 분명히 찾은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10절입니다.
[전8:10] 그런 후에 내가 본즉 악인들은 장사지낸 바 되어 거룩한 곳을 떠나 그들이 그렇게 행한 성읍 안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니 이것도 헛되도다
가끔 아주 봉사도 잘 하고, 공동체 내에서 존경을 받던 직분자가 이중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밝혀져서 충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밝혀졌으니 충격으로 다가온 것인지, 그들의 이중 생활이 밝혀지지 않았다면 죄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내에서 존경을 받는 직분자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방금 읽은 10절 말씀이 이런 뜻입니다. 악인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지만 칭송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악을 행하며 살았지만 죽고 난 후에도 사람들은 그를 칭송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을 보니 참 헛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이런 악인들은 왜 이런 삶을 살아갑니까? 교회에서는 누구보다 신실해 보이는 사람들이 왜 나가서는 누구보다 더러운 삶을 살아갑니까? 왜 그것이 잘못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이중적인 삶을 살아갑니까? 11절입니다.
[전8:11] 악한 일에 관한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는 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악한 일을 해도 당장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는다고 해서 즉결심판이 내려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가 주행하는 도로에는 ‘제한속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도로마다 제한속도는 다 다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전자는 제한속도에 맞추어 차량을 운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 벌점 등이 부과됩니다. 그러나 많은 운전자들이 제한속도를 넘겨서 운행을 합니다. 특히 익숙한 도로를 달리면 달리수록 제한속도를 잘 지키지 않는 운전자들이 늘어납니다. 매일 출퇴근을 하는 도로나 매일 자녀들을 등하교 시키는 길처럼 익숙한 길에서는 과속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즉시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속을 했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벌금이나 벌점을 부여받아야 하는데 카메라가 없고, 교통경찰이 나와서 단속을 하지 않는 이상 즉결심판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과속 운전을 한다는 것이죠.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죄를 짓는다고 해서 바로 처형을 당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붙잡혀 간다거나 매를 맞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혼자만의 죄는 감춰두고 거룩한 척, 경건한 척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를 멀리하는 것보다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14절의 말씀처럼 악인으로 인해 의인이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악인이 받아야 할 처벌을 의인이 대신 받고,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13절의 말씀처럼 악인이 잘 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결코 잘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악인은 잘 되고, 의인은 고통을 당할 때가 많이 있더라는 것이죠.
그렇기에 허무함을 느낍니다. 모든 것이 헛되어 보입니다. 내가 가진 죄성과 욕망을 꺾고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악인이 잘 되는 삶과 내 삶이 비교되어 허탈한 마음이 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도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5절입니다.
[전8:15] 이에 내가 희락을 찬양하노니 이는 사람이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해 아래에는 없음이라 하나님이 사람을 해 아래에서 살게 하신 날 동안 수고하는 일 중에 그러한 일이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라
삶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라는 것입니다. 눈 앞에 펼쳐진 악인과 나의 삶을 비교하면 허무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볼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즐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즐기는 것은 무익한 쾌락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흥청망청 즐기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죠.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울타리 속에 주신 일상적인 기쁨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신 가족, 일용할 양식, 일터, 공동체 등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경계 속에서 기쁨을 찾고, 그 기쁨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 삶의 울타리 속에서 기쁨을 찾고, 그 기쁨을 누리는 오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 내가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는 악인의 모습이 아닌지 돌아봅니다. 내 삶 속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죄악이 떠나가고 의인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소서.
-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내 삶의 울타리 속에서 기쁨을 찾고, 누리는 나의 삶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