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나의 갈 길 다가도록 (384장)
전도서 11장 “불확실한 미래와 확실한 심판 사이에 서서”
전도사 11장은 인생의 불확실함에 대해서 우리에게 설명합니다. 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직역이긴 한데, 이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죠? 여기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선행을 해라. 그러면 나중에 선행한 것이 돌아올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 해석보다는 뒤의 문맥과 연결시켜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라는 말은, 해상무역을 의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석가들의 견해이고, 새번역 성경에서도 그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이 당시의 해상무역은 모험적인 사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리스크가 컸습니다. 하지만 잘되면 큰 이윤을 남기는 사업이었지요. 그래서 1절은 이런 의미입니다. 인생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느냐? 한번 도전해봐라. 이런 말이죠. 그런데 2절에서 정반대의 권면이 나옵니다. “일곱에게나 여덟에게나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한글 번역에서는 빠져 있는데, 몫을 나누어 주라고 나와 있습니다. 오늘 날의 언어로 바꾸면 분산투자입니다. 조금 더 우리 피부에 와 닿는 말로 바꾸어 보자면, 재산을 쪼개서, 땅도 좀 사놓고, 건물도 사놓고, 금도 사놓고, 달러도 좀 가지고 있고. 뭐 이런 말이겠죠. 왜냐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위험을 줄여야겠죠.
전도자는 두 구절 안에서 두 가지 상반된 권면을 합니다. 인생 모르지 않느냐? 위험을 무릎 쓰고라도 도전해 봐라. 잘 되면 대박이다. 또 다른 권면은, 인생 모르지 않느냐? 그러니까 안전하게 가라.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요? 맞아요. 미래는 불확실합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도전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위험을 줄이고 최대한 안전하게 갑니다. 무엇이 더 올바른 길인가요? 전도서의 관심은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존재인지를 말해줍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당장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그러한 작은 존재입니다. 신학적인 질문 한 가지 드리겠습니다. 시간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까요? 네, 시간도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잠시 잠깐 왔다가는 존재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것도 잠깐 사는 시간 속에서 당장 내일일도 알 수 없는 우리들이지요.
전도자가 오늘 읽은 말씀 5절에서 이러한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지요.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생명의 근원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또다시 회의감이 들수 있죠. 내일일도 모르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 무슨 희망을 가지고 살겠는가 하는 회의감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도서는 회의주의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전도자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우리 모습을 통해 절망하도록 만듭니다. 그런데 그 절망의 끝에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6절입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전도자는 어떤 행동이든지 가리지 말고 하라고 충고합니다. 비록 아침에 뿌린 씨앗이 잘 자랄지, 열매를 맺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을 지라도, 희망을 가지고 씨를 뿌리라고 말합니다.
전도서는 7절부터 10절까지 또다른 주제로 넘어갑니다. 젊음, 노년, 그리고 죽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젊음이란 참 아름답습니다. 서두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좋지요. 청년이 얼마나 좋은 때입니까? 이 청년의 때를 누리지 못한다면 인생이 참 아쉽죠. 그런데 전도자가 계속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전도서 11장은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말합니다. 당장 내일 일도 알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 앞에 우리는 좌절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전도자는 너무나도 불활실한 미래를 말함과 동시에 너무나도 확실한 죽음과 심판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등대입니다. 불확실한 인생 가운데 우리가 어떠한 자세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등대입니다. 그 등대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그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아무런 목표없이 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의 시간을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여전히 불확실합니다. 그러나 불확실함 가운데 인생의 등대되시는 확실한 주님을 바라보기 원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 의미있는 씨를 뿌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 제목
1. 교사세미나가 있습니다. 교사세미나에 참여하는 모든 교사들이 교사의 사명으로 다시 한번 무장하기 원합니다. 또한 강사로 오시는 신종철 목사님을 위해서도 기도하기 원합니다.
2. 하반기 훈련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순조롭게 훈련이 시작되도록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