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전도서 4장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20 장 –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전도서 4장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전도서 4장의 시작은 3장의 후반부에 이어서 사람들이 인생에서 당하는 불합리하고 악한 일들을 말합니다. 4장 1절에서부터 3절까지 언급하는 것은 바로 학대입니다. 학대라는 것은 혹독한 짓으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말합니다. 전도사는 1절에서 학대 받는 자들이 흘리는 눈물을 봅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지만 그들을 위로해주는 이들도 없었죠. 오히려 그들을 학대하는 주체자에게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 주체자는 권세를 가지고 계속해서 학대를 하지만, 학대를 받는 자들에게는 위로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2절과 3절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죽은 사람들, 그냥 죽은 것도 아니라, 이미 죽어서 오래된 사람들이 더 복되다고 합니다. 죽는 순간 삶과 멀어지는 것이지만, 죽은지 오래됐다는 것은 그만큼 삶과 멀어졌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죠. 그리고 3절에서는 살아 있는 자, 죽은 지 오래 된 자들보다 아직 태어나지 않아서 해 아래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악한 일들을 보지 않은 자가 더 복되다고 합니다. 그들은 아예 이러한 경험조차 없기 때문이죠.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얼른 세상을 등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복된 것인가?’ 라는 질문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전도자는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전도서 9장 4절에 보시면 ‘모든 산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삶과 죽음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4장 1절부터 3절까지의 말씀보다 9장 4절에 더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4장 1-3절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전도자가 나이가 많아서 오락가락하는 걸까요? 4장 1-3절은 삶과 죽음을 가지고 저울질하는 부분이라기 보다는 삶 가운데 우리가 직면하는 학대가 그만큼 고통스럽고 어렵다는 것을 죽음이라는 가치를 끌고와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을 놓고 보면 죽어있는 사자보다 살아있는 개가 더 나을 정도로 사는 것이 좋은 것인데, 그 삶 가운데에서 당하는 학대는 차라리 죽는게 나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이죠.
4절에서는 모든 수고와 재주가 헛되다고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보시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인생이 헛되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이 헛되다고 합니다. 속된 말로 사람들이 잘 나가면 뭇 사람들에게 시기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기를 받는 것에는 두가지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으면서 수고하고 가진 재주, 능력으로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두 번째로는 자신의 능력으로 수고하는 가운데 다른 이들의 것을 빼앗아 내 부와 명예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시기와 질투 미움과 분노를 받을 수 밖에 없겠죠. 전도자는 다른 이들에게 시기를 받으며 수고하는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 같다고 합니다. 아무리 잡으려 애써도 잡을 수 없는 바람과 같이 잡은 것 같지만, 아무 것도 잡지 못하는 것이죠. 내가 수고하고 가진 능력으로 바라는 것을 얻은 것 같지만, 곁에는 나를 시기하는 사람들에 없어 허탈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5절에는 우매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자신의 몸만 축내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우매자는 게으른 사람, 수고하고 재주를 가진 사람의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요? 수고하는 애쓰란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놀고 대충 살라는 말씀입니까? 우리는 6절까지 보아야합니다.
6절에서는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낫다고 합니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은 4절에 등장한 수고와 재주로 이웃에게 시기를 받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보다 한 손에는 가득하고 평온함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낫다는 것이죠. 두 손에 가득한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한 것이 더 적습니다. 두 손으로 잡거나 무엇을 푸면 한 손으로 한 것의 두 배 이상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손으로 열심히 악착같이 모으고 이웃의 시기를 받는 것보다, 얻을 수 있는 것은 비록 한손에만 가득하더라도 그 가운데 평온함이 있다면 후자가 낫다는 것입니다. 시기를 받지 않기 위해 우매자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은 자기 몸이나 축내는 것이고,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수고하고 애를 쓰되, 그 모으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주위 사람들이 욕하면서 떠나가게 하지 말고, 덜 모아도 주위를 돌아보며 내가 사람들에게 덕이 되는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살피며 평온함을 얻으라는 것이죠.
7절부터 12절까지는 또 다른 헛된 모습을 보는데, 앞 부분과 내용이 연결됩니다. 그 헛된 모습은 홀로 수고하는 모습입니다. 8절에 보시면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수고합니다. 살기 위해서, 또는 부를 얻기 위해서 혼자라도 열심히 수고하였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도대체 내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수고한단 말인가? 이 수고 때문에 정작 내가 쉬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한데, 도대체 이 수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전도자는 이 모습 또한 불행하며 헛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9절,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습니다. 두 사람이 되면 수고함에도 좋은 상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다투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힘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겠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이라면 함께함으로 수고와 힘을 덜 수 있고, 능률이 올라 더 많은 생산량을 얻을 수 있습니다. 10절에서도 그 이유를 말하기를 혼자 있을 때 넘어지면 도와줄 사람도 없지만, 동무가 있을때에는 붙들어 일으켜 줄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11절, 추운 곳에서 잠을 청해야할 때는 혼자 자는 것보다 둘이 붙어서 자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따듯하게 잘 수 있고, 12절, 가는 길에서 강도를 만났다 하더라도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승률이 더 높습니다. 우리는 눈 덮힌 산에서 일행이 한명 다쳤을 때, 그 일행을 버리고 간 한 사람은 가다가 죽고, 그 다친 사람을 엎고 산을 넘은 사람은 둘 모두 살았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구원은 각 개인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을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가며 성장하는 공동체, 즉 교회로 부르셨습니다. 때로는 혼자 가는 것이 더 편하고 빨리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함께가면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오래갈 수 있죠. 나보다 느린 사람 속에 맞추며, 품어주고, 함께 기도해주며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는 왕과 젊은이가 등장합니다. 젊은이는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감옥에서 나와 전 왕을 대신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 부분을 놓고 감옥에서 나왔으니 요셉과 바로이다, 또는 다윗과 사울이다라는 견해를 비롯하여 어떤 학자들은 특정한 역사 속 인물보다는 그냥 보편적인 이야기로 보자는 견해도 있습니다. 저는 다윗과 사울로 보는 견해로 한번 이 말씀을 적용해보고자 합니다. 13절에 경고를 더 받을 줄 모르는 왕보다 지혜로운 젊은이가 낫다고 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경고를 받고도 회개하지 않았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왕의 가문에서 태어난 것도 아닙니다.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이 사울의 추격에서 도망치며 숨어 지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왕이 되었습니다. 해 아래 다니는 모든 사람들이 왕 곁에서 왕을 따랐었지만, 왕이 바뀌자 다음 왕 다윗을 따랐습니다. 16절에 ‘그’는 사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면, 사울이 온 나라와 백성들을 다스렸지만, 후에 오는 자들은 그를 기뻐하지 않고 등을 돌렸습니다. 이 모든 것이 헛된 것이죠.
사울과 다윗의 차이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둘 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지만,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에 핑계를 대며 순종하지 않았고, 결국 회개하지도 않았습니다. 다윗도 큰 범죄를 저질렀지만, 하나님 앞에 겸손해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썼습니다.
전도서의 주제가 무엇인가요?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악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해야합니다.” 이것이 전도서의 주제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에 대한 기도와 고민도 없이 수고하고 나의 부와 명예를 쌓아나가는 것은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정말로 보고자 싶으신 것이 무엇인지, 받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기도해야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이 시간 그러한 고민과 기도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헛된 것을 붙잡으려 애쓰지 않고, 하나님을 붙잡으며 하나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2. 지도자반과 여러 훈련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의 삶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있게 도와주시고, 섬기는 가장총무들이 지치지 않고 기쁨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