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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뻐하는 신앙 (사무엘하 6장)
찬송가 : 23장 “만입이 내게 있으면”
 
내용관찰 _ 웃사의 죽음과 오벧에돔 집의 축복
오늘 본문 말씀은 아주 유명하고 익숙한 말씀이다. 다윗은 자신의 왕권과 이스라엘의 존재의 이유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데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왕위에 오른 후에 아비나답의 집에 20년동안 있었던,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는 일을 추진한다.

대조되는 두 신앙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두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그 에피소드는 여호와 신앙의 대조되는 두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첫번째 일어난 사건은 우리가 잘 아는 ‘베레스 웃사’ 이야기이다. 언약궤를 옮기는데 언약궤의 앞뒤로 웃사와 아효가 있고, 또 그 앞뒤로 다윗이 이끌고간 3만명의 군사들이 위치했다. 이 모습 자체가 불안한 모습이다. 다윗이 언약궤를 옮기는데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갔다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 이 언약궤를 안전하게 지켜서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가겠다는 마음인데… 어떻게 보면 좋은 마음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는 곧 하나님 그 자체라고 여겼다. 2절 말씀에 보면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자신이 거느리는 군사 3만명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불안 불안한 상황이 언제 폭발하느냐! 언약궤를 담은 수레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므로 언약궤가 떨어질 위기에 처한다. 저는 이 상황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안함을 밖으로 표출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안하고 긴장된 상황이 이어지다가.. 아니나 다를까 수레가 덜커덩 거리며 언약궤가 떨어질 위기에 처하자.. 수레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웃사가 나서서 손으로 언약궤를 잡았다. 하나님은 그 웃사의 행동을 잘못으로 여기시고 즉시 죽이신다. 
그런데 사실 그 상황에서 수레 바로 뒤에서 따라가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웃사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웃사의 행동을 통해서 이스라엘 전체의 마음 상태, 특별히 다윗 안에 있는 그 불안한 마음 상태, 즉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흔들리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내 보여주시는 것이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는가 하면은 웃사가 죽은 이후에 다윗이 보고 분노한다. 다윗의 분노는 하나님을 향한 분노였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자신들은 하나님의 언약궤를 보호하기 위해서 군사3만명이 동원되어 가고 있고, 그리고 웃사는 언약궤가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붙들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이 일로 분노하시고 죽이실 수 있는가! 다윗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9절에 다윗은 시간이 조금 지나고 웃사의 죽음의 이유를 깨닫고, 그리고 그 웃사의 죽음은 곧 자신과 온 이스라엘이 당했어야 할 죽음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워 한다. 
그렇게 이번에도 언약궤는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근처의 오벧에돔의 집에 머무르게 된다. 그 당시 상황으로 봐서는 오벧에돔의 입장에서는 두렵고 불안할 일이였다. 자기가 자원했는지 모르겠지만, 10절에 보면 다윗이 거의 강제적으로 오벧에돔의 집에 언약궤를 안치했던 것 같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도치 않게 대신 져야 했던 구레네 시몬 처럼, 오벧에돔도 언약궤가 그 근처에서 멈추어 섰다는 이유로 자기 집에 모시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석달을 지나게 되는데, 그 동안에 오벧에돔의 집에 많은 복이 임했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이 소식을 누군가가 다윗에게 전했을 때, 다윗은 비로소 안심하고 그 언약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오기로 결정합니다. 하나님은 오벧에돔을 통해서 웃사와 반대되는 메시지를 이스라엘과 다윗에게 보여 주시는 것이다. 

언약궤를 붙잡은 웃사의 행동과 자기의 집에 언약궤를 안치하고 석달을 지내야 했던 오벧에돔의 모습은 사실 그 드러나 모습에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다윗과 이스라엘의 전과 후의 마음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웃사의 행동은 ‘자기 중심적 신앙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안전을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은 어떻게 보면 대단히 하나님을 위하는 생각같지만 사실 내가 하나님 보다 더 우위에 있으려는 교만인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병든 것, 저는 것, 흠있는 것을 가지고와서 하나님께 헌물을 드릴 수 있느냐’하면 책망한다.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것을 마치 거지에게 동냥하듯이 좋은 것은 먼저 내가 다 취하고 남은 짜투리의 것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지를 드러내 보여 주는 모습이다. 
<적용>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의 시간 사용, 돈 사용, 에너지 사용을 하나님에게 가장 우선순위를 두고 쓰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것에 쓰고 남는 것을 하나님을 위해 쓰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반대로 오벧에돔은 어떤 마음으로 언약궤를 자신의 집으로 맞이 했을까? 상상을 해보면 정말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언약궤를 모셨을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누추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얼마나 집 청소를 하고 가슴 조리는 마음으로 언약궤를 지켰을까 상상을 해본다. 
다윗도 궁전에서 신하들을 시켜서 오벧에돔의 집을 잘 감시하라고 했을 것이다. 혹시 오벧에돔도 웃사 처럼 죽지는 않는지 걱정하면서 소식을 기다렸을 것이다. 
지금 오벧에돔과 다윗.. 그리고 온 이스라엘의 마음 중심에 있는 감정은 ‘두려움’이였다. 더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였다.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감히 우리의 능력으로 그 분을 보호하거나 그분에게 도움을 드릴 수 없는 것이구나..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는 마땅히 그 하나님의 자비 만을 구할 존재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라
다윗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한 경외하는 마음을 회복한 이후에 진정한 기쁨을 경험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에서 ‘인간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 앞에 무릎 꿇은 우리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에게 자신의 자비를 베풀어 주실 때 비로소 우리가 가지게 되는 영적인 기쁨과 평안을 말하는 것이다. 
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다윗은 몸으로 춤을 추며 표현한다. 그러나 그 모습은 미갈의 눈에는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왜요? 미갈은 하나님이 얼마나 두렵고 크신 분이신지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분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자비가 미갈 자신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다.

말씀의 결론 맺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웃사와 같은 자기 중심적인 신앙의 모습이 아니라, 오벧에돔과 같이 두렵고 떨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게 하시고,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크나큰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진정으로 기뻐하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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