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마음
사무엘하 3장
찬송가 :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내용관찰
오늘 본문의 전체 이야기는 1절에서 설명하듯이 사울가와 다윗가의 대립 속에서 발생되는 이야기이다. 사울가는 갈수록 하향곡선을 그리며 쇠락하고, 반대로 다윗가는 갈수록 그 힘이 강성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사울가에서는 이스보셋이 왕으로 추대되려고 했고, 그리고 다윗가는 당연히 다윗이 왕으로 추대되었다. 하지만 사울가를 붙들고 있는 실세는 다름아닌 사울의 군대장관이였던 ‘아브넬’이였다. 당시에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이 전 권력자의 처를 가지는 것이 그 당시 시대 상황에서는 관행으로 행해져 왔다. 아브넬도 자신이 섬기던 사울왕의 첩이였던 리스바와 간통을 하는데, 그 사실을 이스보셋이 알고 그를 문책했다. 이에 아브넬은 발끈해서, 다윗에게 가서 투항을 선언한다. 아무래도 자기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명분이 없다고 판단했던것 같다. 그러니깐 아브넬은 굉장히 상황판단이 빠른 인물이였던 것이다.
그렇게 아브넬은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다윗에게 찾아가서 투항을 선언하는데, 다윗은 아브넬의 투항을 좋게 받아드리고, 그에게 ‘미갈을 데리고 올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나중에 이 사실을 누가 알게 되느냐! 바로 다윗의 군대장관이였던 ‘요압’이 알게 된다. 요압은 이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 한다. 어떻게 아브넬을 받아드릴 수가 있느냐! 이건 있을수 없는 일이다 하면서 사람을 보내 다시 아브넬을 불러 오게 하고, 그리고 그를 살해 한다. 이유는 요압의 동생이였던 아사헬을 죽인 자가 아브넬이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울의 군대장관이였던 아브넬은 요압에게는 자기 영역을 침범하는 라이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윗은 나중에 이 소식을 전해듣고, 애곡하며 아브넬의 죽음을 애도한다. 마음 같아서는 요압을 벌하고 싶지만, 자기의 왕권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 말로 저주만 할 뿐이였다.
다윗의 문제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 이야기의 중심에선 다윗이 눈에 들어왔는데, 다윗의 좋은 점 보다, 조금 아쉬운 면이 눈에 들어 왔다. 그리고 그 모습은 사실 저의 부족한 모습이기도 하고, 또한 많은 사람들이 가지는 문제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에서 발견하는 다윗의 문제는 “가까운 사람들을 챙기지 못했다”는 점이다.
먼저 요압의 말을 듣고 그 마음을 잘 헤아려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동생을 죽인 원수가 찾아왔고, 그리고 다윗은 요압의 원수된 자를 받아 드릴려고 하고 있으니, 요압의 입장에서는 이해가 안되는게 당연한 것이다. 물론 삼하2장을 보면 아브넬이 아사헬을 죽인 것은 정당방위였고 그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판단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래도 동생의 죽음을 눈 앞에서 지켜 봐야 했던 요압의 입장에서는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는 일이였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깐 다윗이 조금만이라도 요압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그 마음을 다독여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다윗은 아브넬의 죽음에 대해서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고 요압에게 그 모든 잘못을 떠넘긴다. 물론 요압의 잘못이지만 요압은 다윗의 휘하에 있었으므로 그에 대한 책임이 다윗에게도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다윗은 지금 자신 옆에 있는 아내들 보다, 이미 딴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는 미갈을 찾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다윗의 여러 아내들의 마음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본문 2~5절까지 헤브론에서 다윗이 낳은 아들들을 보면 장남 암논은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겁탈하였고, 이후에 다말의 친오빠였던 압살롬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3째아들 압살롬은 그 이유로 다윗의 눈 밖에 나게 되고, 이후에 반역자가 되어 다윗을 죽이려 했다. 둘째 길르앗은 어린나이에 목숨을 잃었다.
왜 그 아들들이 모두 이런 비극적인 인물이 되었을까!! 이런 저런 정황들을 살펴볼 때 아버지 다윗의 관심 부재로 부터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반문 할지 모르겠다. “환란당한자, 빚진자, 마음이 원통한자 600명이 모여서 이루어진 아둘람 공동체는 무엇입니까? 다윗이 그들의 마음을 공감했다는 말 아닙니까?” 이 질문에 분명 다윗은 아둘람 공동체를 통해서 힘들고 어려운 백성들과 마음을 나누고 공감했던 사람이 맞다. 하지만 오늘 다윗의 문제는 정말 가까운 사람들에게 대해서는 무심했다말이다.
리더십의 관점으로 보는 다윗 _ 공감능력 부재
그러니깐 리더십의 관점으로 다윗을 바라보면, 사실 다윗은 공감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인물이였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는 깊은 사람이였는지 모르겠지만, 그외 대인관계에 있어서는 요나단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과는 어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어릴적 아버지 이새와의 관계에서 오는 애정결핍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오랜기간 사울에게 쫓기며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는데서 오는 문제였을까! 아마도 여러가지 경험들이 다윗의 이러한 약점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적용> 우리 자신의 모습에서 이와같은 다윗의 모습을 발견한다. 가까운 관계일 수록 더 조심하고 더 배려해야 하는 줄 알지만, 사실 그렇지 못할 때가 참 많다. 우리는 내 안에서 좋은 리더십의 모습을 발견하기 힘들고, 그리고 주변에서도 존경스러운 리더십을 만나기 참 힘든 시대를 살아간다.
우리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의 참된 목자되시고 우리 인생의 리더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분은 무서울 정도로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신다”고 하신다. 세상에 이런 관심이 어디있는가! 이건 과장법이 아니고 진짜로 하나님은 그 만큼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분이시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돌볼 때, 조금만 다쳐도 마음이 철렁 내려 앉고 자기 자신보다 더 자녀를 보호하려는 그 부모 마음으로 오늘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그 누구보다도 이 하나님의 관심과 돌봄과 인도를 받은 사람이다. 그는 시편의 노래를 통해서 선한 목자되신 하나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자기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알았고 경험했던 사람이다. 만약에 다윗이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던 그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자기와 함께 했던 가까운 가족들, 부하들,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었더라면 성경에 다윗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많은 비극적인 일들이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결단과 적용 _ 가까운 주변을 둘러보라
하지만 역사는 이미 이렇게 흘러왔고, 이제 하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우리 가까운 주변의 사람들을 돌아보라는 말이다. 부모님, 자녀들, 친구들, 직장 동료들, 가까이에 있는데 너무 무심하지는 않았는지…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줄 알고, 지금 너무 무심하게 대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그 은혜와 사랑을 흘려 보내는 오늘 하루, 그리고 오늘의 한 순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