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19장 “도피성”
찬송가: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청년들에게 가끔 듣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원주민인 가나안 민족을 심판하고 그곳에 이스라엘 민족이 살도록 하셨냐는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만 사랑하고 다른 민족은 심판하시는 차별하는 하나님이 아니시냐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한없이 은혜가 넘치는 하나님이지만, 가나안 민족 입장에서는 자비가 하나도 없는 잔인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 대한 내용이 1절에 나옵니다. 가나안에 살고 있던 “이 여러 민족을 멸절하고”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땅을” 이스라엘 공동체에게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한 도피성 제도를 주십니다. 2절에 보면 요단강을 중심으로 요단강 동쪽인 가나안 땅에 서쪽과 마찬가지로 도피성 세 개를 세우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 전체를 세 구역으로 나눠서 억울한 살인자가 도피성으로 피하여 억울한 죽음을 피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십니다.
처음의 질문을 가진 사람 입장에서 오늘 본문에서 보여 지는 도피성 제도를 보고 있자면,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의 기준에 대해 더한 의구심이 들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먼저 가나안 민족에 대한 심판을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창세기 15장 16절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차지 않았다”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원주민중 하나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신명기 19장을 기준으로 무려 4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400년 전에 가나안 민족의 죄악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400년 동안 그들의 죄를 참아주시고 인내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인내하시는 하나님이 먼저이고, 심판의 하나님은 그 다음입니다. 그들도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도피성 제도를 보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도피성 제도의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사람은 오직 억울하게 살인자의 누명을 뒤집어썼을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10절에 나온 것처럼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11절에 나온 것처럼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의를 행할 수 있도록 보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므로 도피성 제도를 마냥 하나님의 사랑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의 선명한 기준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심판의 대상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가나안 원주민까지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땅”, 약속의 땅을 주셨는데,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이웃을 돌봄의 대상이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너희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심판의 대상이 될 것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 예로 제시하시는 것이 14절에 이웃의 땅을 빼앗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웃의 땅, 이웃의 생명을 빼앗는 순간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 이후에 나오는 재판에 넘겨지는 것입니다. 15절의 두 세 사람의 증인으로 그들의 유죄는 증명될 것입니다. 17절에 하나님 앞과 재판장 앞에서는 동일한 의미로 등장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재판 받는 과정을 통하여 죄의 유무는 밝혀질 것입니다. 죄 있는 자는 벌 받을 것이고, 없는 자는 억울함에서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대상과 심판의 대상의 분명한 구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판대 앞에서 정의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에 분명합니다. 그러하기에 “그 땅”을 주셨고, 앞으로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도피성도 주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도피성은 약속의 땅에서 살아갈 때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하나님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도피성은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날 때 심판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입니다. 바라기는 오늘 도피성을 통해 주어지는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가족 예배 및 체육대회를 위하여
의료단기 선교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