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54편
찬양: 여호와께 감사하라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사람이 살면서 당하는 마음의 어려움이 있다면, 그건 무엇보다 배신감일것입니다.
믿었던 이들로부터의 배신감.. 믿었던 자식으로부터의 배신감. 가장 가까웠던 친구로부터의 배신감.. 그것이 작든 크든, 배신감이라는 그 감정은 우리로 참 깊은 수렁에 빠지게 합니다.
왜 이러한 이야기로 시작하는가 하면 오늘 시편의 표제어가 이 기도가 드려진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게 어떤 상황인가 하면 “십 사람이 사울에게 이르러 말하기를 다윗이 우리가 있는 곳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던 때에..”
이 기도의 배경은 사무엘상 23장으로 거슬러 갑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이곳 저곳을 도망다닐때, 아둘람 굴에 숨어있던 다윗에게,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를 쳐서 타작 마당을 탈취하고 곡식을 모조리 가져간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비록 도망자 처지였지만,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기도하면서, 결국 그일라를 블레셋의 손으로부터 구원해 냅니다.
그때 이 소식을 들은 사울은 다윗을 잡으러 왔고, 그일라 사람들은 배은망덕 하게도 자기들을 구해준 다윗을 배신하고 사울에게 그를 넘기려 합니다.
다윗은 처절한 배신을 경험하고… 그곳을 떠나 다시 광야에서 숨어다녀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든 와중에, 십광야에 머물고 있을때, 그 십 사람들이 사울에게 사람을 보내 다윗이 숨어 있는 곳을 알리게 됩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26장이르면 그들은 한번 더, 즉 두번이나 다윗을 배신합니다. 사실 이 두번의 배신이 그에게 정말 마음이 뼈져리게 아팠던 것은, 바로 그 십사람들은 다윗이 속한 같은 지파인 유다지파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들, 그리고 그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다윗은 배신을 당한 것입니다. 수년을 사울로부터 쫓겨다녀야했던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얼마나 지쳤을까요.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그는 자기 지파 사람들 조차도 믿고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는 의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상황속에서 다윗은 기도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시편입니다.
먼저 1-3절을 보면 다윗의 간구입니다.
1절”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그는 자기를 구원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특별히 “주의 이름으로” 구원해달라고 합니다. 히브리사람들에게 있어 이름은 단지 호칭이 아니라, 그의 인격, 성품, 그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주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본질과 성품에 따라서 자신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 백성에게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지식과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이름은 언제나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이름이었습니다. 믿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배신하고 떠나갔지만, 주님은 변치않고 떠나지 않으셨던 것이지요.
믿음과 확신은 우리의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그분의 말씀을 묵상함이, 그래서 성경에서는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배신과 모함이 난무한 세상속에서, 오늘 다시한번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또 묵상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절에 그는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 그러면서 왜 그가 이 기도를 드리게 되었는지를 3절에서 이야기 합니다. “낯선 자들이 일어나 나를 치고 포악한 자들이 여기서 수색하며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아니하는 자들” 십도, 사울왕도..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앞에 두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 앞에 두지 않는 자들은 어떠한 자들입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그렇기에 그들은 십 사람들은 하나님보다는 사울을 더욱 두려워했던 것이지요.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그들은 사울의 편에 서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떠습니까? 하나님을 그 앞에 두는 자들일까요? 아니면 사람을 그 앞에 두고, 사람을 두려워함이 내 인생을 끌고가는 힘인가요? 오늘 하나님을 우리앞에 두는 인생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일 설교 말씀처럼, 늘 하나님을 인식하는 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우리의 삶의 목적을 이루어감을 다시한번 기억하길 원합니다.
3절까지는 기도였다면, 4절이 이르러서는 간구가 아닌, 확신의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돕는 이시다” “주께서는 내 생명을 붙들어주시는 이시다”라고 선언합니다. 이 선언은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신뢰를 보여줍니다. 오늘 개역개정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4절은 “보라”라는 감탄사로 시작합니다. 이말은 “확실함”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그가 이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나를 돕는이 라고 그는 말합니다. 돕는이라는 단어는 당시 군사적 동맹에 쓰여졌던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합니다. 그 언약이 있기에 하나님은 반드시 도우러 오실꺼라 다윗은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그렇기에 그에게 생명이었습니다. 생명을 붙드시는 분이 하나님!!! 그 언약속에서 그는 알았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사울이나 십사람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상황속에 있더라도, 우리의 삶과 생명이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그 확신가운데, 다윗은 다시한번 간구합니다.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주의 이름, 주의 힘으로.. 이제는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는 간구합니다. 그의 간구의 근거,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그 간구의 근거는 언제나 그분의 본질과 성품입니다. 주의 이름, 주의 힘, 주의 성실하심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나의 간절함이 하나님이 응답해주서야만 하는 근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이 바로 우리의 간구의 이유요 근거인 것입니다.
끝으로 다윗이 6-7절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내가 낙헌제로 주께 제사하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자원해서 드리는 이 감사의 제사가 바로 이 낙헌제입니다. 그의 이 고백은 바로 자신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감사의 제사는 단지 혼자 감사하는것이 아니라, 온 회중앞에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 듣는 모든 이들로 하나님의 존재와 가치를 드러냄으로 영화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임들, 각 가정교회 모임들마다 이 감사의 고백, 낙헌제가 드려지고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그가 이렇게 모든 사람들 속에서 감사의 고백을 드리는 이유는 주의이름 때문입니다. 그 주의 이름이 선하시기 때문에.. 이 시편에 기록되어 지는 엘로힘 창조주, 아도나이.. 통치자, 여호와,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그 이름으로 그분이 행하시기 때문인것이지요. 우리고 믿고 고백하는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통치하시며, 우리를 향한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그는 7절에서 구체적으로 감사의 이유를 언급합니다. 모든 환난에서 자신을 건저주셨기 떄문이라고.. 그러나 놀라운 것은 여기서 그의 고백이 과거형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는것인가? 그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그분의 이름대로 선하게 행실 행하실것이라는 믿음, 그 믿음의 고백의 확신을 그는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그 과거형으로 나타내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확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 삼하 24장으로 가면 보게 됩니다. 사울이 더이상 그를 쫓게 됩니다. 다윗의 간구를 따라 응답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그 선하신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그분의 시간속에 이루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으로부터 거절당하시고, 배신당하시고, 결국 주님에게까지 버림을 받으시면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절귤하시기까지 그는 그렇게 배신과 버림을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이 끝까지,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성부 하나님의 대한 신뢰이고, 사랑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어떤 상황속에 있어다로, 우리가 그분의 이름, 그 선하심을 붙잡을수만 있다면,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과 신뢰의 고백을 가지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 오늘 하루를 주님앞에 드리는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주님 오늘 주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가 감사하기 힘든 상황속에서도, 믿음으로 감사를 고백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모든 가정교회교회들마다 그 낙헌제가 드려지고,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게 하여주시옵소서.
2.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가운데 하나님의 이름과 그 이름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우리의 생명을 붙드시는 하나님을 앞에두고 살아가게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