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45편
찬양: 주님을 생각만해도, 아버지의 노래 2
시편 45편의 이야기는 그 앞의 시편 44편과는 또 전혀 다른 분위기의 노래입니다. 왕의 결혼식과, 왕과 그의 신부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찬가입니다.
이 시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결혼전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식의 첫단계는 약혼식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약혼식과는 좀 다른 개념인데, 결혼으로 간주되는 약혼이었습니다. 약혼식을 하면 신랑과 신부는 남편과 아내로 불리고, 부부로 간주됩니다. 무론 한 몸으로 연합되기까지는 결혼식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신랑은 그 사이에 신부에게 줄 결혼 지참금을 준비하게 되지요. 신부측에 줄 결혼 지참금이 준비가 되면, 신랑을 신부를 데리러 옵니다. 그리고 신랑이 올때까지 신부는 아름답게 단장하고 신랑을 기다립니다. 우리가 잘아는 비유, 신랑을 기다리는 열처녀의 비유가 바로 이 배경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면, 그곳에는 큰 결혼잔치가 벌어집니다. 이런 배경속에서 오늘 시편을 이해해야합니다.
1절은 서론이고, 2-9절은 신랑인 왕과 그 일행이 신부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10-12절은 신랑의 일행을 기다리는 신부에게 주어지는 조언이고, 13-15절은 마침내 왕의 혼인 잔치가 열립니다. 그리고 16-17절은 이 시편의 결론입니다. 함께 한절 한절 좀 살펴보겠습니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이 말이 어떤 의미인가요? 영어로 이 표현을 보면 My heart overflows with inspired word
지금 시인은 자기의 마음이 흘러넘친다고 말합니다. 영감있는 말들이 흘러넘쳐서, 마치 멈출수 없는 시인의 붓처럼, 가슴깊은곳에서 부터 왕을 향한 그의 마음, 그 사랑의 마음이 넘쳐흐른다는 것입니다.
나를 데리러 오는 신랑을 향해 부르는, 그만을 사랑하고 기다렸던 신부의 노래. 물론 이 노래는 단순한 결혼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과 이러한 사랑에 빠져본적 있습니까? 너무나 사랑하여서, 그 사람을 향한 그 사랑의 말이 마치 봇물처럼 솟아오르고 흘러넘치는, 아름다운 시를 써 내려가는 시인.. 사랑하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주님을 생각만 해도 내 맘이 좋거든” 오늘 우리가 부른 그 찬양의 고백처럼 말이지요.. 오늘 이 기도의 시간을 통해 그런 마음이 그 사랑이 다시한번 넘쳐나길 소망합니다.
2절을 보십시요. 신부가 신랑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2절을 보면 “그 왕은 은혜를 입술에 머금었다..” 머금다는 말을 원어로 더 정확히 해석하자면, 쏟아져내린다, 쏟아붓다는 뜻입니다. 그 입술에서 은혜로운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은혜로운 말은 무엇입니까? 신부를 향한 사랑의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그를 사랑하기 전,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먼저 찬양하기 전, 그분이 먼저 우리를 찬양하셨습니다. 아이를 안고 그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향해 노래를 부르듯,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부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찬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사랑의 노래에 대한 반응인 것이지요. 오늘도 우리가 신랑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그 은혜의 말들, 그 사랑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술에 찬양이 흘러넘치길 소망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또한 그 신부가 신랑을 그토록 사랑한 이유는 3-5절.. 그는 용맹한 자였습니다. 진리와 온유 공의를 위하여 용맹을 발하시는 분입니다. 정의가 굽고, 온유함이 사라진 이땅에, 그는 항상 정의로우시며,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유일한 진리이십니다. 그렇기에 신부는 그를 찬양합니다. 사랑한느 여러분, 그 진리, 온유, 공의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진리이시며, 온유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땅을 통치하십니다. 나의 신랑은 왕이십니다. 그렇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그분을 찬양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속에서도, 기다림속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가 기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러한 그가 왕이시고, 그가 자기의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의 남편이십니다. 우리가 바로 그의 신부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존재입니다. 8-9절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한 교회들의 영화로움을 보여줍니다. 끝가지 신랑을 기다린 자들에게, 선을 행하면서 낙심치 않고, 주를 위해 살아간 자들에게 주시는 그 영화로움, 우리는 그 영화로움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의 신부로 영원히 그분의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 이 기다림의 시간에도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영화로움을 바라보며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에게 10-11절에 이러한 조언이 주어집니다. “딸이여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무슨 말일까요. 이전의 삶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은 이전에 살던 삶을 잊어버리는 것을 요구합니다. 여전히 이전의 즐거움에 연연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구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영화로움은 바로 한 사람, 그 사람만을 사랑하는 아내에게 주어진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11절 그 약속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할지라”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상상할수 없는 것들입니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그분의 사랑은 모든 것, 그 어떤것과 비할 수 없는.. 모세가 고백한것처럼.. “주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거 가나안땅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다. 저는 이 광야에 있겠습니다!”라고 말했던 것과 같은 그.. 사랑..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 모두가 누리길 원합니다. 12절의 말씀처럼, 두로의 딸들, 즉 모든 사람들이 그를 보며 경배할 것이고, 왕과 함께 누릴 우리의 영화를 부러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로 16-17절 그 신부와 신랑은 함께 연합하여 한몸이 되고, 그의 자녀들은 그 왕과 함께 온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임을 그 신부는 찬양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편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내가 다시 오리라” 말씀하신 우리의 신랑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결혼을 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그분과 약혼을 통해 언약을 맺은 신부입니다. 그리고 그 신랑은 우리의 처소를 예비하신 후 우리를 데리로 오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 영화로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편은 우리가 누리게 될 그 영광을 보여줍니다. 이 신랑과 함께할 그 영화로움을 바라보며 이 신부는 그의 입술에 기쁨과 찬송이 흘러넘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오늘 우리가 찬양할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이 아니라, 우리가 곧 마주할 것, 이것이 어떤 상황속에서도 우리가 찬양할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무엇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아름다우시고 공의로우시며 영화로우신 그 주님을 우리는 신랑으로 마주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편이 우리에게 참 위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 어떤 것으로 줄 수 없는 참 위로.. 그래서 오늘 우리의 마음에 이 기쁨과 소망의 찬양이 넘쳐나는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 주여 우리의 마음속에 다시한번 다시오실 주님을 바라보며, 기쁨과 소망이 넘쳐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절망속에서도, 우리가 곧 마주할 주의 신부의 영화로움을 바라볼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 오늘 우리의 마음을 빼앗으려 하는 것들, 빼앗고 있었던 것들을 회개합니다. 주님 한분만을 사랑해야 하는 신부인 우리의 마음을 빼앗었던 것들을 주님앞에 내려놓고 회개하오니, 다시한번 우리로 주님만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 오늘 이 말씀이 필요한 자들, 기다림속에서 지치고 힘든 자들에게 참 위로가 되게 하시고, 그 위로를 전해주는 우리의 삶, 교회의 사명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