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육의 생명과 죽음
(시편 49편)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는 형이하학적인 물질세계와 형이상학적인 심적이고 영적인 세계가 존재합니다. 또 이 둘은 아주 긴밀한 관계 가운데 있습니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다’라는 말이 있지요. 정서적이고 심리적인 상태가 육체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3서 1:2에서 요한은 ‘그대의 영혼이 건강한 것처럼 몸도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라는 말로 축복합니다.
음악을 예로들면… 물리적인 진공을 나타내는 여러가지 음계가 조화를 이루어서 영혼을 울리는 멋진 하모니를 만듭니다. 이처럼 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는 서로가 아주 긴밀한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오늘 시편 49편의 시인은 1~4절에서 ‘지혜자의 소리를 들으라’고 말하면서, 그 지혜자의 소리를 10~11절에서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명제를 말합니다. 헬라어에서 생물학적인 생명을 뜻하는 단어 ‘바이오스’와 영적인 생명을 뜻하는 단어 ‘조에’가 있듯이, ‘죽음’에도 생물학적 죽음과 영혼의 죽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물학적 육체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 영혼의 죽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은 어떻습니까? ‘죽음이 나와 아무 상관 없는 것 처럼 여기며 살아갑니다’ 사람이 건강할 때에 ‘건강함의 소중함’에 대해 느끼지 못하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모든 존재하는 것은 언제가 죽습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예요. 그런데 시인은 6~8절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지혜자의 소리’를 전합니다. 그것은 재물이.. 그러니깐 물질이 우리 영혼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 찬양 중에 이런 찬양이 있어요.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오늘 시인은 이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중세 시대에 교회가 어떻게 타락했습니까? 로마카톨릭 교리 가운데 ‘연옥설’이라는 교리가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아닌 그 사이 중간에 ‘연옥’이라는 곳이 있고, 이곳에서 ‘천국과 지옥’행이 결정된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세시대 교회가 사람들에게 연옥에 있는 죽은 자를 천국을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면죄부’를 비싼 값에 판 것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고백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재물’이나 이 땅의 ‘물질’로는 우리의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12절과 20절에 거듭해서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존귀하나 이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과 다른게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다른 피조물 보다 분명 더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존귀한 피조물이라 할찌라도, 죄로 인해 주어진 ‘죽음’이라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창조주 이시며 구원자 이신 하나님으로 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구원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살아있으나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는 잠시 잠깐 살아있는 것 같지만, 우리의 영혼은 죽어서, 꺽여진 꽃과 같이, 영혼은 이미 죽은 존재요. 우리의 육체도 점점 시들어 늙고 병들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는 가축이나 짐승과 인간이 아무 차별점이 있다는 것을 시인은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지혜와 가장 귀한 깨달음은 다름아닌 15절 말씀에서 시인이 고백하듯이, 물질이 우리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고, 또한 영이신 하나님이 물질인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의 영혼의 죽음과 육체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원자 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물질 세계에 살아가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영적인 감각이 둔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 비밀들을 깨닫게 하여 주심에 항상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 우리의 영안이 열려서 물질 세계 속에서 영적 세계를 바라 볼 수 있게 하소서.
-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하는 환우들이 그 영혼이 잘 됨 같이 그 육체의 건강도 회복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