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하나님을 맛보아 알라” 시편 34편
시편 34편은 성격으로 분류한다면,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보통 ‘감사시’와 ‘지혜시’로 분류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개인의 감사에 대한 고백이 다른 이들을 향해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것을 권면하며 지혜로 훈계하는 내용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편 34편의 표제어가 보여주듯이 지금 다윗의 상황은 그렇게 감사할 상황은 아닙니다.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척하다가 쫓겨났다고 되어있는데, 사무엘상 21장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상 21:10-15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가드왕 아기스 앞에서 미친 척 했는데, 블레셋은 연합국이었고 그 나라 중 하나가 가드였으며 왕은 아기스였지만 블레셋의 왕 이름은 전통적으로 ‘아비멜렉’을 통칭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손에 죽은 골리앗이 바로 이 가드 사람이었습니다.
삼상 17:4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어떻게 보면 가드로 피하여 갔다는 것은 그의 최악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도 그것을 알아 미친체하며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을 취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러한 가드왕 아기스에게서 쫓겨난 후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
다윗이 경험하는 것과 우리의 삶의 간극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차이점 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미친체하였지만 가드왕 아기스 앞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쫓겨났다는 사실 그 이면에서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를 우리의 시각과 방식으로만 해석하지는 않습니까?
모든 상황속에서 주를 찬양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상황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때입니다.
점점 우리의 신앙이 현재 보여지는 현상에 국한되는 것 같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당신의 선하신 뜻 가운데 섭리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송축합니다.
1절은 ‘항상’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2절에 그의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그 이름이 높임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하나님의 천사가 자신을 둘러 진치고, 하나님께 피하는 자신을 지키셔서 자신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4-8절)
이어서 다윗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다른 이들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시 34:9-10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경외하는 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혈기왕성한 백수의 왕 사자가 굶을지언정 여호와를 찾는 자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시 34:15, 18 “[15]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하나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며, 그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십니다.
다윗은 그 삶으로 하나님이 어떠하신지를 보여주고, 그 삶을 통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나아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같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만나고 경험하는 하나님은, 개인적인 만남과 은혜로만 머물지 않고 그것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신실하심을 보여줄 수 있는 도구와 통로가 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을 교훈하는 다윗의 고백속에서 하나님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도 담고 있습니다.
시 34:19-21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21]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 의인을 미워하는 자는 벌을 받으리로다”
시 34:22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의 영혼을 속량하시나니 그에게 피하는 자는 다 벌을 받지 아니하리로다”
메시야적 구원은 결국 죄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사역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속량하시고 하나님을 피난처로 고백하며 믿음으로 의지하는 자들을 그 형벌에서 제하십니다.
종국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오늘 한 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노래하며 높이며 증거하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제목
1. 모든 상황속에서 그 이면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믿음을 주옵소서
2. 삶의 한 자락, 한 자락이 그 하나님을 풍성히 경험하는 현장이 되게하셔서 삶으로 하나님을 노래하게 하소서
3. 우리의 삶과 찬양이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4. 대한민국이 바르고 공정한 나라로, 하나되는 나라로, 다음 세대가 소망을 갖을 수 있는 나라로 세워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