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3:1-26
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끊임없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 구원받는 길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삶은 스스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삶이지만 주를 믿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은 구원의 길로 향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메시지도 동일한 메시지였습니다. 주전 701년쯤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산헤립에 의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원정을 온 산헤립은 25만명의 군대로 유다 46개 성읍을 초토화했습니다. 그리고 약 3년간 예루살렘을 에워쌌습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항복을 하지 않고 저항을 했습니다. 물을 확보하면 끝까지 저항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여 기드론 시냇물을 높은 곳인 예루살렘 도심지로 끌어올리는 터널 공사까지 했습니다. 아마 히스기야 왕은 물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저항을 이어나가려고 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 예루살렘과 유다를 그냥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1절입니다.
[사3:1]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하나님께서 양식과 물을 제거해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지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끊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2-3절은 이들이 의지하는 다른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습니다.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가 그들이죠. 하나님은 이들도 제거 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누구입니까? 용사와 전사는 군사적 안전을 담당하는 자들입니다. 재판관은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자이죠. 선지자, 복술자, 요술자는 영적 지도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장인은 사회를 유지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사회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자들입니다. 정치적-사회적 권위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기본적인 물과 양식 뿐만 아니라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는 권위자들 또한 제거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4절 이후는 그 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입니까? 아이들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도자로 세울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어린 아이가 예루살렘과 유다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와 사회에 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이 무질서한 틈을 타서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마비가 될 것입니다. 통제 불가능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5절을 보니까 백성이 서로 학대하고, 이웃을 짓 밟을 것이라고 합니다. 젊은이는 노인 앞에서 천한 사람은 귀한 사람 앞에서 건방지고 교만한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정상적인 사회 질서와 교양과 예의범절이 완전히 무너진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한 결과는 혼돈입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법과 뜻을 깨고 반항하고, 거역한 결과는 비정상적인 사회. 비정상적인 삶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런 처참한 재난 속에서 어떤 이는 살아남고, 어떤 이는 크게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10, 11절입니다.
10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11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이는 그의 손으로 행한 대로 그가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
의인은 복이 있어 자신의 행위의 열매를 먹지만 악인에게는 화가 있어 행한 대로 보응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사실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상황 속에서는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의인이라고 해서 총알이나 바이러스가 피해가는 것도 아니고 악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죽는 것도 아닙니다. 이럴 때는 의인과 악인의 구별이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말씀이 모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인의 운명과 악인의 운명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악의 번창에도 불구하고 의를 행하고 살면 그는 자신이 뿌린 의의 열매를 맛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경험적인 현실 속에서는 불분명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결코 의인의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모순과 현실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의는 살아 있기 때문에 의인은 궁극적으로 승리하며 구원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존해야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유행이나 악을 행하여도 잘 살아가는 자의 모습을 바라보고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 의로운 삶을 살아갈 때 행위의 열매를 먹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바라보고, 거기에 우리의 삶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 의지하여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순과 같은 현실 속에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가 오늘도 살아 있기에 의인은 복된 삶을 살게 되고, 악인에게는 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며, 주께 내 삶을 거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 모순과 같은 현실 속에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의존하며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오늘이 되게 하소서.
- 정부의 새로운 발표가 있었지만 마음의 위축함없이 기쁨으로 주일 예배를 준비하며, 참여하는 온 성도들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