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내 맘이 낙심되며 (찬송가 300장)
말씀 : 욥기 39장 1~30
욥과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계셨던 하나님께서 지난 38장부터 개입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나에 대해서 안다고 많은 말을 내뱉었는데 과연 정말 알고 있기는 한 것이냐? 너희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참 지식이냐? 이렇게 하나님이 질문하셨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질문들을 쏟아내셨습니다. 창조할 때 너희들이 어디에 있었느냐? 내가 땅에 기초를 놓을 때에 과연 언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우박 창고를 아느냐? 물이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아느냐?
그에 대한 답을 하려면 질문을 해야 하는데 질문조차 알 수 없는 그런 폭풍같은 질문을 하나님이 쏟아 놓으셨습니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무능한 존재임을 일깨우셨습니다. 또 그런 것을 만든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존재인지를 깨우치셨습니다.
질문 자체가 엄청난 질문이었습니다.
여지껏 욥이 아예 답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런 질문들이었습니다.
그런 반면에 오늘 39장은 욥이 일상 생활하면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질문입니다. 너무 엄청난 질문을 해서 아무 말도 못하느냐? 그렇다면 너희가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을 묻겠다.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십니다.
(욥 39:1, 개정) 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나무 하러 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산염소가 어떻게 새끼를 치고 사는지 아느냐? 그리고 너희가 그렇게 사냥하려고 좇아다니는 사슴이 어떻게 새끼를 치고 사는지 아느냐?
사람들이 늘 가까이 하고, 늘 알고 보고 있었던 것이라도 그것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몰랐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별생각 없이 그냥 염소, 사슴, 들나귀, 타조가 자기들 힘으로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아기를 낳을 때도 얼마나 힘이 듭니까? 옛날에는 아기 낳다가 산모가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래서 산파들이 옆에서 도왔습니다. 요즘도 병원에 가서 의사와 간호사에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염소와 사슴이 그렇게 혼자서 새끼를 낳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아주 기가막힌 예를 하나 더 들고 계십니다.
염소와 사슴은 애지중지 자기 새끼를 낳고 기른다고 치자, 그런데 타조를 봐라. 타조는 애지중지 자기 새끼를 낳고 기르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번식을 할 수 있는지 아느냐? 는 질문입니다.
(욥 39:14, 쉬운) 타조는 땅에 알을 낳고 모래로 그것을 따뜻하게 덮지만,
(욥 39:15, 쉬운) 곧 잊어 버리고 발로 밟아 깨뜨리거나 야수들이 밟도록 그냥 내버려 둔다.
타조는 알을 낳고 그냥 모래에 덮어둡니다. 태양볕을 쬐어 따뜻한 모래 속에서 타조 알이 부화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알을 밟을 수 있고, 다른 들짐승들이 지나가다 밟기도 합니다. 이렇게 타조알을 아무도 돌보지 않는데 번식이 이루어집니다.
모든 것이 그냥 이루어지거나, 자연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과 돌보심으로 타조알이 부화되고 번식이 가능한 것입니다.
내가 오늘 아침 눈을 뜨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 것이 그냥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숟가락을 들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비록 마스크를 쓰고 외출할지라도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 자녀를 학교 보내면서 잘 갔다 오라고 인사하며 보낼 수 있는 것이 그냥 된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 주님 내가 어리석었습니다. 내가 너무 모르고 살았습니다.
우리의 무지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질문을 듣던 욥의 심정이 이런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어리석기 때문에 순간순간 감사하지도 않고 그냥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무감각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마치 다 아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더 심도 있게 욥을 생각하도록 질문을 하십니다.
(욥 39:19) 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하나님이 이번에는 인간이 가장 가까이 길들여 사용하는 말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욥 39:20, 쉬운) 네가 말에게 메뚜기같이 뛰도록 하였느냐? 그 당당한 콧소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욥 39:21, 쉬운) 말은 앞발로 힘차게 땅을 박차고 용사들을 향해 전진하면서,
(욥 39:22, 쉬운) 두려움을 모르고 칼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욥 39:23, 쉬운) 화살통은 그 등에서 철커덕거리고, 창과 단창은 번쩍인다.
(욥 39:24, 쉬운) 땅을 종횡무진으로 날뛰고, 나팔이 울려 퍼져도 멈출 줄 모른다.
(욥 39:25, 쉬운) 나팔 소리 가운데서도 힝힝 콧소리를 치며, 멀리서도 전쟁 냄새를 맡고 장군들의 고함 소리와 아우성치는 소리를 듣는다
사람이 말을 길들여서 전쟁에 끌고 나갑니다. 전쟁에 말은 종회무진 활약합니다. 적군의 칼과 화살을 무서워 하지 않고 활약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들이 말을 잘 길들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묻습니다.
사람이 그렇게 말을 길들이게 한 줄 아느냐?
길들여지도록 하나님이 그렇게 말을 만드셨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길들여지도록 말을 창조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말을 길들일 수 없습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을 향해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입니다.
인간은 자기 필요에 따라 어떤 동물은 사냥을 하고, 자기 필요에 따라 어떤 동물은 길들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면서 마치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자신이 그것을 만든 것처럼 착각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식물과 동물은 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그 분의 뜻대로 창조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속에 창조되어진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관심 갖지 말아야 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창조 명령이잖아요.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위의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1:26-28)에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만 관심을 가지고 길들이고 돌보았습니다.
관심 없는 것은 내버려 두었습니다.
내게 유익한 것만 가꾸고 돌보았습니다.
우리는 우리 욕심껏 세상을 바라보고 가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의 뜻대로 돌보고 가꾸어 나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자기 중심적으로 편협하게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알고 행한다고 합니다.
기도
1) 오늘 아침 눈뜨면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그냥 자동적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크신 돌보심 속에 이루어지고, 우리에게 주어짐을 알고 감사하게 하소서.
2) 우리의 욕심껏 세상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뜻대로 가꾸어 나가는 지혜로운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