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욥기 42장
찬양: 온맘다해, 내 맘이 낙심되며
욥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되어집니다.
41장.. 그 말씀의 마지막에 하나님은 갑자기 “리워야단”을 이야기 하시면서, 그것을 장황하게 묘사하고 계십니다.
리워야단이 무엇인가? 리워야단의 의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설명하지 않으시는 이유는…지금 욥과 친구들은 리워야단에 대해서 익히 들어왔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필요하지요 리워야단은 무엇인가? 성경속에서 리워야단은 하나님의 질서에 위협을 가하는 가장 강력한 짐승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왜 욥에게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왜 그 결론, 마지막즈음에 이 “리워야단”을 이야기 하시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12절부터 마지막가지 그 리워야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은 묘사까지 하고 계신닙니다. 대체 왜 이 리워야단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일까?
그 리워야단, 누구도 제어할 수 없고, 두려워하는 그 존재에 대해서.. 하나님은 욥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는가?
낙시꾼이 낚시로 물고기를 끌어올리려 애쓰고 있는데, 알고보니 그것이 리워야단입니다.
“그 리워야단을 네가 노끈으로, 밧줄로, 갈고리로 그걸 낚아 올릴 수 있느냐?”
"아니면 그 리워야단이 너에게 애걸하겠는가? 살려달라고.. 너의 종이 되겠다고 계약을 맺겠다고”
“마치 새를 가지고 놀듯이.. 어시장 바닥에서 그것을 놓고 팔듯이 그것을 거래할 수 있겠느냐?”
그 리워야단을 이야기 하신 그 이유에 대해서 1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 그 누구도 그것을 격동시킬 만큼 담대하지 못하거든 누가 내게 감히 대항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11절 말씀하십니다. “그 리워야단도, 온 천하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내 것이니라”
리워야단을 그의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그가 제어할 수 없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그 고난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욥과 친구들이 마주한 고난에 대한 대답은, 욥의 친구들이 말했던 것처럼, 그들의 경험, 자기들의 지식속에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의 잘못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들안에서 거기서, 그들 스스로 대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 고난의 이유를 그들안에서 찾고자 했고, 그 고난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도 그들안에서, 그들의 이해와 지식안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욥이 괴로움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의 지식으로도, 그의 경험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그가 마주한 시간, 고난… 그 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주고싶으신 대답은 무엇일까요?
그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는 어떠한 대답을 찾아야 했을까요?
우리는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리워야단의 존재 앞에서, 그러나 그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우리의 작음과 무능함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하나님이 리워야단을 말씀하시면서 “이 나약한 인간아, 어디 리워야단 조차도 하나 통제할 수 없는 니가 하나님께 대항하려하느냐..” 라고 그에게, 또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그 말씀을 하고 계실까요?
만약 단지 그것이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크신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고통을 통해서 해야만 했을까 하는 질문을 지울 수 없을 것입ㄴ디ㅏ.
그분의 크심과 위대하심 드러내시는 그분의 방법가운데, 하나님을 우리는 선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을 그 분께서 의도하신 대로 두려워할 수는 있겠지만, 그분을 사랑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것입니다.
과연 정말 하나님이 그것을 위해 욥에게 이 고난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적어도 크고, 또한 선하신 하나님이라면, 분명 “나는 너와 비교할 수조차 없을 만큼 큰 하나님이다”라는 단지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에게 이렇게 끔직한 고통을 당하게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무엇을 말씀하고 계신것일까요? 우리로 무엇을 알기를 원하셔서 이 리워야단, 통제할 수 없는 존재, 그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실까요?
(욥7:17-19)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크게 만드사 그에게 마음을 두시고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순간마다 단련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내가 침을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
마치 이 욥의 깨달음은 수많은 리워야단 앞에 섰던 그 다윗의 고백을 우리로 떠오르게 합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당신은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이 리워야단, 이 고난앞에… 서게 하시며.. 이 작고, 미약하고 먼지와 같은 나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십니까…”
욥에게 리워야단은 스스로 통제하여서 제거해야 할, 제거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그 위에 서게 하시기 원하십니다. 그것을 다스리는 사람, 하나님보다 조금 못한, 그의 아들로서 그 위에 서야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욥아! 너는 리워야단을 통제하거나 제어할 수 없지 않는가? 라고 하는 것은 “너는 나와는 다른 미약한 인간이다. 어떻게 나에게 건방지게 대드냐”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능력이 작아서 그것을 제어할 수 없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로 마주하게 하실 영광은 그가 스스로 만들어낼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고난의 시간을 통해 그로 마주하게 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실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그 영광의 자리에까지 이끄시는 하나님의 주권, 그 사랑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가 마주하고 있는 모든 일, 이해할 수 없는 그 고난의 일이 나를 사랑하셔서
“그저 그냥 이렇게 살면 안되나요?”라고 말하는 그 말에도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증거, 신실하심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오늘 고난앞에서도 묵묵히 이겨내고, 버티낼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시간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1. 하나님 우리의 삶속에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스스로는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묵묵히 버티어내고 견디어낼 수 있는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2.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으로 인하여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3. 주님 고통과 아픔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지켜주시고, 동행하시며, 우리를 향해 끝없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 회복시켜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