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왕이 되시게 하라
(역대상 15장)
찬송가 : 38장 “예수 우리 왕이여”
내용관찰 _ 언약궤 예루살렘 입성
오늘 본문은 드디어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이동시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실 본문을 찬찬히 묵상해 보면 다윗이 언약궤를 이동시키는것이 아니고,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데, 다윗은 그 언약궤가 가는 길을 예비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먼저 언약궤가 안치 될 장막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제사장과 레위인들과 함께 철저히 율법에 따라 이 모든 일을 진행시킵니다. 전에 처럼 수레에 언약궤를 모시지 않고, 막대기를 언약궤 모퉁이 고리에 꿰어 어깨에 매고 들어가게 합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맞을 찬양대를 구성해서, 비파와 수금과 제금을 울리며 찬양함으로 언약궤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언약궤를 지키는 문지기를 임명하여 세우기 까지 합니다.
왕이 납실 때 행하는 의전
이 모든 모습들이 흡사 무엇을 연상케 하는가 하면은 ‘왕이 행차하실 때 행하는 의전’을 연상하게 합니다. 우리 나라 사극 같은 것을 보면 왕이 납실 때 ‘풍악을 울리고, 갖가지 의전을 행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리고 최근에도 어떤 특별한 기념일에 대통령을 의전할 때도 군악단이 연주하고, 레드카페트를 깐다던지, 최고급 승용차를 타서 지나가는 것을 보곤 합니다.
그러니깐 오늘 본문에서 언약궤를 맞이하는 다윗의 태도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뭐냐? 그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모시는 태도 속에,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는 다윗의 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전에 언약궤의 예루살렘 입성이 실패한 이유
이전에 언약궤의 예루살렘 입성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언약궤를 하나님의 임재로 보지 않고, 마치 부적 같은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언약궤를 빼앗아 갔던 블레셋에게는 자신들에게 저주를 가져다 주는 물건으로 여겨졌고, 그리고 이스라엘은 언약궤가 자신들을 지켜 주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로 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것 같지만 사실 나를 위해 존재하시는 하나님으로써 하나님의 존재가 의미 있는거지, 하나님이 왕이시고, 그를 위해 존재하는 나로써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었던 것이 아니였습니다.
역대상 13장에 웃사의 죽음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였습니다. 하나님은 웃사를 죽이심으로 당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인식에 경종을 울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역대상 1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권을 높이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1절에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다윗이 다윗 성에서 자기를 위하여 궁전을 세우고 또 하나님의 궤를 둘 곳을 마련하고 그것을 위하여 장막을 치고 (대상15:1)
다윗과 궁궐 / 언약궤와 장막을 나란히 병행해서 보여주면서, 이 땅에서 다윗이 왕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지만, 하늘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역대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드러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당시 역대기 청중인 바벨론의 포로의 신분이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의 왕은 앗수르왕도 아니고, 바벨론 왕도 아닌,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의 왕이 되심을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달았습니다.
결단과 적용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과거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 처럼, 사실 우리도 하나님 나라 백성이지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로 잊기 쉬운 사실은 하나님이 나의 왕이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먹이고 입히고 인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나 직장이나 이 땅에서 벌어 먹기 위해 하는 그 것이 나를 살게 한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저 ‘나의 왕국’이 강성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부적’과 같은 존재로 여기지는 않느냐는 것이죠!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자기 부인’ 즉, 나의 인생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주님이 허락하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자기 부인’ ‘자기 주도권’을 포기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합니다. 내 인생의 주도권을 포기할 만큼의 가치있는 보화를 발견하면 됩니다.
어린 아기들은 맘에 드는 어떤 것을 손에 쥐면 쉽게 안놓습니다. 손에 쥔 것을 빼앗으려고 하면 울고 불고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울리지 않고 그 손에 쥔 것을 내려놓게 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바로 더 좋은 것을 주면 됩니다.
다윗은 그것을 발견했던 자입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왕권을 행사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고, 더 효율적이고, 더 안전하게 나라를 통치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인생을 가만히 보면 ‘왕’이라는 직분에 그가 그렇게 연연해 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바로 이러한 다윗의 모습처럼, 일상의 삶 속에서, 나의 주도권을 포기하고, 진정한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가 내 삶에 왕이 되시게 하고, 뿐만 아니라 예수를 왕으로 인정하는 나를 통해서, 내가 속한 공동체에도 그리스도가 왕이 되시는 귀한 은혜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오늘 있을 가장 총무 세미나 가운데 주님께서 왕으로 임재하여 주시옵소서.
내일 있을 예배와 신년교사하례회 모임 가운데 주님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