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아 하나님의 은혜로(찬송가 310장)
말씀 : 로마서 7:1~25
“오직 예수뿐이네” 라는 찬양곡이 있습니다. 이 곡의 가사가 이렇습니다. “은혜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져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오늘 말씀은 이 찬양의 가사가 절로 생각이 나는 말씀입니다. 율법과 죄의 관계를 바울이 논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우리는 주님의 은혜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계속적으로 율법이 아닌 은혜로 살아야 함을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율법의 역할은 무엇인가?하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오늘 바울은 그러한 질문에 명쾌하게 답을 줍니다. 7절을 보시면 바울은 이렇게 말함으로 율법을 정의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이어서 9절에서는 그 율법때문에 죄가 살아났다고 말합니다. 즉 바울은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인임을 알게하는 것이며, 좀더 심하게 말하면 죄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렇게 보면 율법은 없어져야 합니다. 죄를 알게하고 죄를 짓도록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러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12절의 말씀을 추가합니다.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율법은 죄를 알게하고 죄를 짓고 있음을 상기시켜주지만 그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것입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율법이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면, 그 율법을 가까이 함으로 거룩하고 의롭고 선해져야 하는것이 맞는데, 오히려 율법을 가까이 함으로 우리는 더 많은 죄목과 더 많은 죄의식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버릴수도 없고 또 가까이 할수도 없게 됩니다. 바울은 이 어려운 명제를 자신이 겪는 갈등으로 풀어서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14절 이후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이 겪는 아이러니는 15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내가 의로움 삶을 살기를 원하는데 실제로는 자신이 미워하는 것을 행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악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알고, 그 삶이 주는 유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데, 정작 실제 삶은 정반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신을 바라볼때의 결과론적인 모습이 24절에서 말하는 곤고한 사람인 것입니다. 헬라어의 뜻은 심한 고난을 겪고 있다는 말입니다. 비참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이 비참한 현실을 끊을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보혈의 은혜만이 바울의 겪는 삶의 아이러니를 끊어줄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 묵상할 8장 1절과 2절에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바울은 이 해방과 자유를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를 통해 경험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보니, 자신의 삶속에 있는 그 아이러니가 비참함으로 달려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때문에 매번 예수님의 은혜의 소중함을 알게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간절하나 행동이 매번 그렇게 되지 않는 자신을 보며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기에 이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유일한 분 예수님이 묵상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자유자임을 계속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율법과 죄의 문제를 해석해줍니다. 율법이 거룩하고 의로운 것이지만, 그 율법으로 죄가 드러나는 것은 결국 율법으로는 답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율법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의미에서 율법은 구원의 핵심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현장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중요한 도구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현장으로 인도하는 도구이기에 율법은 여전히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은혜 아니면 안되는 것이 맞네요. 주님의 그 은혜가 나에게 비추어지지 않았다면 나 혼자 아무리 발버둥처도 안되는 것이였네요. 이 사실을 매일의 삶속에서 알게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아무런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선물로 주셨지만 하나님의 법을 가까이 하게 하심으로 갈등을 있게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내적갈등이 우리로 하여금 은혜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하루를 살아갈때, 바울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법을 알고 실천하기를 바라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기도 합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때 마다 은혜의 하나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러할때 주님이 우리의 속사람이 갈망하는 그 은혜의 삶을 살도록 힘을 주시고,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이 소망을 붙들고 은혜를 먼저 갈망할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