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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내려놓지 못한 자존심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1. 하나님은 인생의 구렁텅이 속에서 깊이 만나 주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유다가 바벨론에게 넘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끝까지 전했습니다. 오늘 말씀 2-3절에서도 하나님의 뜻하신바를 똑바로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 성에 머무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그러나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는 자는 살리니 그는 노략물을 얻음 같이 자기의 목숨을 건지지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 성이 반드시 바벨론의 왕의 군대에 손에 넘어가리니 그가 차지하리라 하셨다 하는지라"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번 선포한 예레미야는 4절과 같이 시드기야왕의 고관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듣게 됩니다. 


"이에 그 고관들이 왕께 아뢰되 이 사람이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오니 청하건대 이 사람을 죽이소서 그가 이같이 말하여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나이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음에도 고관들은 자신들에게 듣기 싫은 이야기 평안이 아닌 재난을 이야기 한다하며 그를 죽이라고 왕에게 호소합니다. 그야말로 예레미야는 유다에게 있어서 재난과도 같이 여겨지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차라리 제거 하면 모든 재난이 해결될 것만 같은 그러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시드기야는 고관들의 말을 듣고 예레미야를 두둔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5절 말씀과 같이 자신은 고관들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하며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한 예레미야를 포기합니다. 이것은 마치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는 수많은 군중들의 압박 속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을 허용하는 장면과 매우 비슷합니다. 자신은 백성들의 신임을 얻음과 동시에 골치 거리 문제가 하나 해결되는 듯한 그러나 마음 속이 찜찜한 상황인 것입니다. 그 고관들의 원대로 시드기야 왕은 예레미야를 구덩이에 빠드립니다. 감옥의 뜰에 있는 왕의 아들 말기야의 구덩이에 던짐을 당하게 되었고, 그 구덩이 안에는 물이 없고 진창이 가득한 곳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진창이라는 것은 진흙을 말합니다.


진흙속에서 뒹굴러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저는 군대에 있었을 때에 처음 진흙 속에서 뒹굴러 본 경험이 있습니다. 일명 각개전투 훈련이라고 하는데요. 아마 남자분들이라면 대부분 이 훈련을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가지 코스가 있는데 코스에서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지나가야 하는 상황이 연출됩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그 흙탕물 속에는 조교들의 소변도 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각만 해도 찝찝합니다. 어떻게든 흙을 덜 뭍히려고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고 묻기 전에는 오히려 마음이 불안합니다.그러나 온몸에 진흙에 묻었을 때에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더이상 건질 것도 없고 차라리 신경쓰지 않고 주어진 시간 속에서 앞에 있는 코스를 넘어가고자 하는 마음만 들 뿐입니다. 그야말로 나 자신을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예레미야가 경험한 진흙탕은 이스라엘이 경험하게될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여호와의 약속인 바벨론에게 항복하면 살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 멸망당하게 될 것임을 예레미야가 구덩이에 빠지게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대언자 예레미야는 구덩이에 있는 것은 아주 잠시였습니다. 그는 곧바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에벳멜렉이라는 구스인 왕국내시의 간곡한 청으로 구덩이에서 건짐을 받게 됩니다.(7절-11절)


하나님의 사람은 사실 죄악의 구렁텅이 속에서 죽어야 마땅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었던 우리들을 건지시고 돌보시고 사명을 완수하도록 돕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만나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우리는 살아야 마땅한 것인데 혹시 감사를 잃어버리고 살고 계시진 않으신가요?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 

 시드기야는 에벳멜렉이라는 내시의 간곡한 청으로 인하여 구덩이에서 건짐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에 시드기야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예레미야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심리를 드러냅니다. 시드기야의 마음은 불안불안 합니다. 고관들을 의식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어길 수 없는 두 마음을 품은 상태인 것입니다. 왕으로서 고관들에게 책잡히지 않으려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대로 바벨론에게 항복을 함으로 받을 수 있는 굴욕을 모두 의식한 두마음이 시드기야에게 있었습니다. 왕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굴욕이 불가피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인가 그는 이러한 고민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미 왕과는 달리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내어 맡긴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 자존심이나 허영심이 자리할리 만무했습니다. 자신의 안위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또한 백성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은 길을 걸어가길 원했습니다. 그는 이미 자신의 밑바닥을 경험하였고, 자신의 소신은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전하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미련함이 사람의 지혜로움보다 지혜롭다고 믿는지 말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이 구겨지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잠시 저버리더라도 내 가오, 내 자존심은 지킬 것인지 우리는 어쩌면 일상 속에서 이러한 믿음의 선택을 해왔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구차한 자존심을 하나님 앞에 내세울 때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은 계속해서 보류되고 연기될 것입니다. 나의 안위와 자존심, 나의 자랑과 나의 나 됨을 온전히 내려놓고 겸손히 낮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그제서야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진정한 크리스천은 이미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자신의 자존심을 내던지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거절 당하고 미움을 당하고 오해받고 천대받고 낮잡아 보는 시선을 이겨내며, 견뎌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형상에 더욱 가까워져 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여러분의 자존심을 내려 놓으셨습니까? 시드기야와 같이 자존심과 함께 영예를 모두 얻고자 하다가 모두를 놓치게 되며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비참한 최후의 심판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소망합니다.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힌채 사슬에 묶여 바벨론의 감옥에서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남유다 마지막 왕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추고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지라도 승리해내는 크리스천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이념보다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어쩌면 유다 민족에게 예레미야는 반민족주의자, 친바벨론 주의자로 오해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사대주의자로 오인을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라는 말을 어찌 그리도 용감하게 할 수 있는지 정치적 안목만을 가지고 본다면 괘씸하기 까지 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인들에게는 친일파에 대한 상당히 경멸하는 모습이 있듯이 예레미야가 그러한 취급과 대우를 받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어느 민족을 더욱 가까이 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애썼을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전하는 데에 매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왕 앞에서도 그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갈대아인에게 조롱과 모욕을 당할 것을 우려했던 시드기야와 달리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념과 신념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념과 가치의 차이로 말미암아 서로 마음이 상하고 분리되고 더이상 가까이 할 수 없을 것 같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공동체 안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념과 신념을 넘어 믿음으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할 수 있는 나눔과 섬김의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반면 시드기야는 사실 합리주의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는 백성도 하나님도 다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합리적 사고 이념적 사고,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에 함몰되어 하나님의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또한 지나치게 인간적인 온정에 치우쳐서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는 일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말씀을 우리의 삶의 기준으로 삼을 때에 공동체 안에서 서로간에 상반된 이념과 가치를 가지고 있을 지라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편에 서게 됨으로 형통하고 원만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하는 바가 우리가 지켜왔던 이념과 대치되거나 상치될 때에 우리는 과감히 우리의 이념과 가치를 저버릴 수 있는 단호함이 또한 있어야 하겠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민족주의든 사대주의든 반일 반미 친일 친미 든 어떠한 이념과 사고의 영향을 더 받았든지 아니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그 모든 우리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념을 깨뜨릴 줄 아는 확고한 믿음이 우리 가운데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세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1. 하나님은 인생의 구렁텅이 속에서 깊이 만나 주십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존심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

3. 이념보다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기도제목

1. 나의 자존심을 내새우기 쉬운 상황에서 보다는 상대를 배려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더욱 닮아가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2.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에 실현됨으로 형통한 삶을 이루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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