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찬송가 455장)
제목 : 하나님의 공의와 예레미야의 인내
앞 장 27장에서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왕의 멍에가 속히 꺾일 것이고 성전의 기구들이 속히 돌아오리라고 예언하였던 선지자들이 거짓말을 일삼고 있었다고 고소하였었습니다. 이 장에서는 예레미야가 그러한 부류에 속하였던 한 선지자와 겨루는 장면이 나옵니다. 1. 예언자를 자처하였던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반박하여, 느부갓네살의 권세가 기울 것이고 바벨론으로 옮겨진 사람들과 성전의 기구들이 돌아올 것이라 예언하면서(1-4절) 그 징표로 예레미야의 목에 있던 멍에를 꺾었습니다(10-11절). ii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말이 진실임이 밝혀지기를 빌면서도, 과연 그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앞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냐의 말이 거짓임이 밝혀질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5-9절) iii. 속임을 당하는 자와 속이는 자의 운명이 여기에서 선포됩니다. 속임을 당한 백성들은 그들의 나무 멍에가 쇠 멍에로 바뀌게 될 것이고(12-14절), 속이는 자인 저 선지자 하나냐는 두 달 안에 죽음을 맞게 됩니다.
우리는 예레미야 28장에서 하나냐와 예레미야의 대조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먼저 우리는 거짓 선지자의 오만방자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반박함으로써 그에게 모욕을 준 것도 모라라 더욱 그를 짓밟아 주기 위하여, 예레미야가 여러나라들이 느부갓네살의 종이 될 것에 관하여 예언한 후에 그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메고 다녔던 멍에를 그의 목에서 빼앗아 꺽어 버렸는데, 이는 예레미야가 그랬듯이 자신의 예언이 성취되리라는 것을 나타내는 징표를 사람들에게 보여줌과 동시에 자기가 예레미야를 이겼고 그의 예언을 좌절시켰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거짓의 영이 이 거짓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어떤 식으로 진리의 성령의 언어를 흉내내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11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년 안에 이 나라의 목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목에서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꺽어버리리라
하나냐가 자기 생각에 깊이 몰두하여 스스로 이것을 믿게 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것이 거짓임을 알고도 사람들로 믿게 하려고 한 것이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가 확신에 차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진리의 하나님이 그 거짓말의 후견인 노릇을 하시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참 선지자의 인내심을 보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그는 욕을 당하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고, 극도의 분노에 차 있는 자와 다투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자기 길을 간 이유는 대답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직접적인 대답을 해주실 때까지 기다리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나냐에 대하여 특별한 말씀을 주실 것을 기대하였고, 그 말씀을 받을 때까지는 스스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작정이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던 선지자들의 예를 들며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받게 되리라.
사실 예언의 성취라는 것은 수년 수십년 때로는 수백년이 걸리기도 하고 수천년이 걸리기도 하는 것이라 사람으로서는 그 예언의 성취를 당대에 맛보고 간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또한 담대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진정한 예언은 그 성취의 여부에 달려 있다라는 분명히 진리를 담대하게 전한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당장에 원하는 바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 더디게 느껴질 때에는 분노하기도 하고 답답해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리는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며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좌우로 분열되고 말씀을 전하는 자들도 서로의 신념을 가지고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고자 결국 한쪽으로 치우쳐 버리고 맙니다. 인간 수준의 판단으로 인하여 돌이킬 수 없는 극심한 후회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좌로나 우로나 취우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받는 우리 모든 믿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 진리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가를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예언들이 신약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졌는지를 봄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분의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믿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실 예수님을 인내하기 힘든 삶의 모든 순간 순간에서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신부의 삶을 우리는 살아내야 합니다. 크고 작은 우리의 기도제목도 우리는 인내함으로 기다리며 가장 선하게 응답해 주실 것임을 기다리고 인내해야 합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오실 예수님을 인내함을 가지고 기다리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예레미야 28장에서 예레미야와 그의 대적 사이에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발견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책망할 줄 모르는 자처럼 자기의 길을 갔지만, 하나님은 곧 그의 입에 말씀을 넣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묵묵히 자신의 사정을 그에게 맡기는 자들을 위하여 나타나시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반박한 죄의 댓가로 죽음이 선고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전에는 아무말 없이 자기 길을 갔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게 되자 하나냐의 목전에서 담대하게 그에게 그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냐가 하나님의 의해서 유죄로 선고받은 죄목은 바로 백성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모독하였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을 믿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바를 외치고, 그들이 범죄하여도 평강을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댓가는 너무나도 비참했습니다. 하나냐에게 내려진 심판은 바로 너는 이 땅에 더 살 가치가 없어서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너는 땅 속에 묻히리라.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죄로 금년에 죽겠고, 죽음이 극심한 고통과 저주를 동반하여 너에게 임할 것이다. 이 선고는 그대로 집행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 28장에서 세가지를 보게 됩니다. 첫번째로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오만 방자함입니다. 대중들의 인기를 얻고자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자신의 힘으로 억지로 예레미야를 좌절시키는 하나냐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두번째로 신실한 참선지자의 인내심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까지 그의 입술을 지키고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하게 선포하였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말씀은 진리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었기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예레미야와 하나냐를 사이에 두고 하나님은 그분의 공의로우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하루를 하나님과 함께 말씀과 함께 동행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심의 증거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인내함으로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의 증거들이 열매로 드러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제목
- 내가 인내하고 기다려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의 마음을 오늘 하루도 지키게 하소서
-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