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내 맘이 낙심되며 (300장)
"내 모습 그대로 주께 나아가라" (욥기 23장)
오늘 말씀을 보시면 상당히 지쳐 있는 욥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자기는 참으로 죄인도 아니요, 주님만을 바라면서 살아왔는데, 친구들의 말대로 지금 현재의 모습은 주님의 저주를 받은 모습뿐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의 말에 반박하며 자신의 무죄함과 자신의 선함을 반박하고는 있지만, 현실의 욥은 오히려 더욱 더 저주받은 모습처럼 변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속에서 아무리 욥이 자신의 무죄와 선함을 주장한들 그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욥은 더이상 친구들의 답변에 대꾸하기보다 하나님께 정면으로 나아갑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일부러 숨으시는 것 같습니다. 욥의 표현대로 세상 어디에도 계시지 않은것처럼 느껴질 뿐입니다. 마지막 최후변론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마져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 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로 욥의 마음이 극심하게 요동합니다. 15절 이후로 보시는 것처럼 공포의 감정에 휩쓸리게 됩니다. 17절의 말씀은 원문자체의 뜻이 모호하기에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욥의 관점이 이제는 죽음을 향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우리도 힘듦과 고난을 넘지 못하고 감성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경험하며 삽니다. 사랑이나 사업의 실패, 가족의 죽음 등이 아마 대표적인 예일것 같습니다. 작게는 사람에 대한 실망, 자신에 대한 실망, 환경에 대한 실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할때 너무나도 큰 아픔을 느끼고, 때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하고, 심하면 신앙마져도 쉽게 등을 지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의 어려움을 우리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의 키워드이자 크게보면 욥기 전체의 주제라 할 수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10절).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이 말씀이 욥을 살리고 있습니디. “하나님은 나의 길을 아신다.”, “하나님은 나를 아신다.” 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의 고백이 감정의 벽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붙들게 합니다. 나를 아신다는, 나를 정말 잘 아신다는 그 믿음의 끈이 요동치는 감정의 회오리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래서 감정의 무너짐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거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약해지고 무서워지고 죽음을 바라보게 되었을지라도 그는 그 원인을 하나님께 두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감정은 무너졌지만 그래서 죽음만이 보일 지경이지만 그것마져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의 모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갑니다. 절대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상당히 건방져보이고 교만해 보였지만, 그것이 욥이 느끼는 실제 마음이고 생각이었기에 그대로 가지고 갑니다. 이유는 단하나! 나를 아시는 하나님을 붙들기 위해서입니다. 내눈에 보이지 않고, 내 손에 잡히지 않아도 여전히 하나님은 나를 잘 아신다는 그 사실을 끝까지 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이성과는 맞지 않는 상황이라도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더 확실하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다친 마음, 상한 마음, 슬프고 애통하는 마음, 그 모든 마음을 그대로 주님께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욥처럼 아주 떳떳하게 말입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나를 아시는 그 주님께서 행하실 일들을 소망하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의 날개로 날아오르는 진정한 회복을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제목-
1. 이 한주간 예수의 이름을 전하는 성도에게 담대함과 능력을 허락하시고, 복음을 들어야 하는 이에게 옥토와 같은 마음을 주소서.
2. 교회학교의 교역자와 교사들이 한 영혼에 헌신할 수 있는 힘을 주시고, 교육환경의 개선을 위한 지혜를 주소서.
3. 싱가폴의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복음을 경험하게 하시고, 그로 인해 복음이 각 종족의 땅에 전해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