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1장
찬양: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455장)
북부지역의 사람들이 르호보암이 보낸 신하 하도람을 쳐 죽입니다. 그리고 그는 급히 세겜을 빠져 나옵니다.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 와서 자신을 거부한 그들과의 전쟁을 위해 군대를 모집합니다. 어떻게 보면 르호보암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겐 다윗의 왕조가 유일한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역사적 명문도 있었을 것이고, 자기의 신하를 모욕한 그들에게 복수를 하는것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기에, 문제삼지 않을 이 일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스마야를 통해 그에게 가셔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과 전쟁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세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올라가지 말라!,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라!, 각기 집으로 돌아가라!!
이것은 하나님이 지금 북 이스라엘, 그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르호보암의 인식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북 이스라엘 사람들을 반역자로 여기고, 적으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그들과 싸워 온전한 이스라엘 지역을 되찾고자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남 왕국 유다와 북 이스라엘은 형제 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나라가 둘로 나뉘었다고 해도, 서로 적대시 하지 말고, 형제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막9:40)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자가 주님의 이름을 귀신을 내어좇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그에게 그것을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그를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지경은 자기를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를 반대하지 않는자까지, 그의 품의 지경은 넓었던 것이지요.
오늘 저의 모습을 보아도 별반 다르지 않을때가 참 많은데,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향해 대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와는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르면, 그들을 적대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 만약 그것이 복음을 반대하는 자가 아니라면, 형제라는 것을 말입니다.
형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인정의 표현입니다. 그들의 악함과 연약함도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왜 그곳에, 그자리에 그를 두셨고, 나를 두셨을까..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나와 다른 그들을 사랑하라!는 것을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기 보다는 그들과 싸우지 말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그들의 한계를 알았고, 그들의 연약함과, 그 악함에 억울한 자의 마음도 아셨던 것이지요. 물론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그 자리까지도 가야하겠지만, 그것은 분명 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와 다를 지라도, 우리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우리안에 그들을 용남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한 후, 그가 한 일은 무엇이냐.. 바로 5-11절 그에게 외적에 침입에 대비한 여러 성읍들을 요새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너와 다른 이들을 용납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그는 그가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중요한것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나와 다른 사람, 그들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요새를 세우고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내 마음을 살피는 것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초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습니까? 다를 어렵게 하는 사람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초점을 두며 어떻게 하면 그들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우리의 초점과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다시한번 보여줍니다. 끊임없이 죄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공격하려 할때에, 그 마음을 지키고, 말씀의 갑옷을 입어서 죄악에 넘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다시한번 우리의 마음을 말씀앞에 확증하는것,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하고 시급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자 13-17절 그의 나라는 점점 강성해집니다.
그와는 반대로, 여로보암은 세겜과 단에 우상을 세웁니다. 더이상 사람들이 예루살렘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제사장을 마음대로 세우고, 금송아지를 섬기게 합니다. 그러자 신앙을 지키려는 사람들, 특별히 레위인들이 남쪽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의 복수라는 방법이 아니라, 내버려두심의 방법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우상숭배가, 신실한 자들을 남 유다로 망명하게 하였고, 그들로 인해 유다는 더욱 강성해 갔습니다.
오늘 성경의 저자는 이 모든일, 유다가 점점 강성해가는 이 일에 대해서 이렇게 해석합니다. 바라봅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길을 걸어갔기 때문에”
솔로몬의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 그분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당연해 보이는 이 일속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가까이 해야겠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자들로 인해 그 나라가 강성하여졌던것 처럼, 오늘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이지만, 솔로몬이 처음 향해던 그 길을 따라가야겠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우리안에 확고하게 세워가며, 우리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지켜야 합니다.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