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 10장
찬송: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하나님의 은혜로 솔로몬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세상에서 아주 유명한 왕이 되었고,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겸손히 주님의 지혜를 구하던 솔로몬은 점점점 변해갑니다. 그 일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그 자신도 스스로 눈치 채지 못할만큼 조금씩 진행되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지혜로운 선택인 정략적 결혼은 이방신을 섬기는 아내를 받아드림으로,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 안에 점점 우상이 들어오게 되어 집니다.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그들이, 하나님과 함께 우상을 섬기게 된 것이지요. 사실 오늘 르호보암의 일은, 르호보암의 죄악이기도 했으나, 나중에 보면 하나님께서 선지자 아히야를 통해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라는 선지자의 역사를 바라보는 해석처럼, 솔로몬의 죄악의 댓가였음을 이야기 합니다.
왜 솔로몬의 죄악의 댓가를 르호보암때에 치루게 되는 것일까? 하나님은 끝까지 솔로몬을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끝까지, 마지막까지 그의 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거둘 수 없었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은 한 순간에가 아닙니다. 점점 아주 스스로도 모를 만큼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와 그 우상이 결국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 우리가 돌이켜야 하는 삶의 영역, 죄의 모습이 있다면 주님앞에 다시한번 돌이키는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솔로몬의 사후에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은 세겜을 향합니다. 세겜은 북부지역의 중심지로서, 그는 북부 지역의 지파에도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이에 북부 지방의 사람들은 솔로몬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하고 애굽으로 망명했던 이전 한때는 솔로몬의 신복이었던 여로보암(왕상 11:26-40절)을 불러서 그를 대표자로 삼고 르호보암과 협상하게 한다.
그들이 요청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짐을 가볍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과 자기의 궁전을 짓기 위해서 노동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솔로몬은 북부 지역 사람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습니다. 그들에게 (무거운) 고된 노동을 시킨 것입니다. 이일로 인해 솔로몬은 북부 지역의 사람들에게 원성을 사게된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여로보함이 제시한 조건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 두차례 회의를 합니다. 먼저 솔로몬은 도운 원로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라고 합니다.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격려하라는 정책을 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하던것과는 다른 방향이었습니다. 물론 솔로몬의 공이 있지만, 분명 솔로몬의 업적을 냉정히 평가하여, 그가 저질렀던 잘못에 대해서는 이제는 다른 길로 가야한다는 것입니다. 르호보암이 새로운 길, 즉 하나님께서 원래 솔로몬에게 원하셨던 길을 그가 가기를 조언했던 것이지요.
솔로몬이 가야했던 길은 바로 “듣는 마음”을 갖는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주셨던 지혜는 곧 듣는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들어야 했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다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 원로들은 르호보암을 향해 이런 충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이시여, 그들의 마음을 듣고,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해해줄 수 있다면, 그들은 분명 자발적으로 왕에게 충성을 다할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어떻게 합니까? 그는 자기 나이 또래의 젊은 신하들과 다시한번 의논을 한다. 세상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나이든 사람들과는 다르게, 변화에 민감하여, 개혁적인 사고방식으로 민심을 잘 읽고 새로운 정책을 제안할것인가?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그들이 말한 것은 바로 그들을 이렇게 허용하면 더 큰 것을 요구할 것이니, 지금부터 그들을 짓눌러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 무거운 멍에를 주고, 가죽채찍이 아닌 전갈 채찍을 사용하십시요! 더 강력한 정부, 더 사람들을 압박하라고 조언한 것. 그리고 솔로몬은 원로들의 지혜로운 조언을 버리고, 젊은이들의 조언을 따라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는 북부 지역의 사람들이 다윗 왕가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혜로운 사람들과 의논하고 하나님께 아뢰는 겸손함을 갖추지 못했다. 결국 이것이 나라를 둘로 분열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고된 노동”이라는 말을 보며 “출애굽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의 아래서 “고된 노동” 즉 “아바드”를 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찾아갑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아바드)하게 하라!!”
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의 백성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더 힘든일을 시킨다.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는 일에 이제는 짚을 주지 않고 벽돌을 만들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 바로의 밑에서 바로를 섬기며 고된 노역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 즉 “아바드”, 예배하는 백성으로 회복시키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이 다시 “고된 노동”을 하는 백성이 되고 있었습니다. 명분은 성전 건축이었지만, 인간의 욕심과 야망이 담겨져 있는 것…하나님은 그것을 두고 보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르호보암의 권력을 빼앗아 여로보암에게 주신 것입니다. 나라가 분열되어져 버렸습니다.
이러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떤 평가를 내리시는가…
이 일에 대하여 저자는 신학적인 평가를 내린다.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일, 하나님이 아히야를 통해서 여로보암에게 하신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그는 이야기 한다.
이 모든 일이 솔로몬의 죄악과, 르호보암의 불순종과 죄악으로 인한 일이지만,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음을 에스라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우리는, 오늘 우리의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다시한번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시지 않을때,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도 우리는 “고된 노동”의 삶을 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혜로운 자들의 조언을 들어야 합니다. 그 지혜로운 자들은 누구입니까? 궁극적으로는 바로 지혜의 근원이신 예수그리스도, 그분의 말씀을 들을때 우리는 예배의 삶을 살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회복하는것. 그것이 화합의 길이다. 그는 예수 앞에 엎드렸어야 했습니다. 솔로몬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 없이는 살수가 없습니다! 고백했던 그 고백…오늘 우리가 회복해야할 고백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 예수가 필요합니다. 오늘 이 교회를 향한, 우리 아이들을 향한, 이땅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도록, 그래서 깨어진 그곳에 회복이 일어나도록 주여 도와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