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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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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아 하나님의 은혜로(찬송가 310장)

말씀 : 요한일서 4:1~21


우리는 흔히 구약의 말씀을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합니다. 너무나 많이 들은 성경의 정리입니다. 그런데 이 정리에 구약과 신약의 아주 중요한 차이가 담겨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예수님의 이야기이지만 구약은 그 예수님을 아직 확실히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와 예언들이 넘쳐나지만 확실한 그림을 그리기에는 조금씩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은 보다 더 엄격합니다. 우리의 눈에 복음이 희미해보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헷갈리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중간의 타협을 용인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구약의 하나님은 때로는 무서워보이고, 너무나 엄격해 보이고, 매정해보입니다. 반면에 신약은 구약 전체를 통해서 알려주신 예수님의 실체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우리가 혼란해하거나 오해할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러한 이유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은  보다 더 하나님의 원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할때 우리는 이러한 구약과 신약의 중요한 차이를 유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말씀을 구약적 세계관속에서 해석하게 되고, 그렇게 될때, 우리는 오늘 말씀을 편협한 시각으로 이해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 6절의 말씀은 거짓선지자를 분별하라는 말씀입니다. 수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우리를 현혹하고 있으니 분별하라, 멀리해라, 배척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과 세상의 영을 구분하고 있고, 그것을 구분하여 세상의 영을 멀리해야한다는 말씀이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구약적인 세계관으로 쉽게 이해합니다. 소위 이원론에 빠지는 겁니다. 성과 속을 나누고 성스러운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겁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석하면 7절 이후의 말씀이 이렇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우리도 사랑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해야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는 이 말씀이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적용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미 앞에서 세상의 영을 따르는 사람들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고속에 있던 대표적인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는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긴 사람입니다. 세상의 영에 지배받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여긴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아직 구약적 세계관에 갇혀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서 그들이 성령을 체험하는 것을 보게하심으로 베드로의 닫힌 영의 눈을 뜨게 하시고, 신약적 세계관 아니 온전한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는 말씀을 보면서 이 성경적 세계관에 눈을 떠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말씀을 반만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1절에서 6절 말씀의 키워드는 2절과 4절의 말씀입니다. 2절에서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라는 문장은 이것으로서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게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러한 이유로 너희는 하나님의 영을 알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4절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되었고, 하나님께 속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하였다는 확신을 알려줍니다. 이 확신이 왜 중요하냐면 이어지는 4절 말씀처럼, 너희 안에 계신 이 즉 예수그리스도가 세상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더 크신 분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영은 이미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였습니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하나님께 속한 것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 승리한 승리자로서 세상의 찌꺼기에 영향받지 않도록 나누어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나누어서 그들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눔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승리하신 주님과 동행하고 그 동행의 삶을 통해서 세상의 영들을 위해 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일이 있다는 것을 이어서 제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7절과 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서로 사랑해라.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 속했다면 사랑해라.. 이것이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그리고 이 요청에는 제약이 없음을 주목하기 바랍니다. 무슨 말이냐면 앞서 구분한 세상의 영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도 이 사랑이 표현되고 전해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승리하였기에 그 악함에 굴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는 사람은 이 승리를 거머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악함속에서도 그 악함에 굴복하지 않을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승리자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둔 사람입니다. 예수의 사람들이 바로 세상의 영에 지배받는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그들에게 생명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계속되는 10절과 11절 말씀을 보십시요. 하나님이 먼저 사랑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화목제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예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이제 말하십니다. 이제는 너희가 사랑을 내밀라고 말입니다.

그 정점이 12절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세상의 영에 속한 자들, 5절을 보시면 그들은 세상에 속해있기에 세상의 말을 하고 세상의 말을 듣습니다. 이 상황에서 주님을 알 방법은 없지만, 하나님은 이 악의 고리를 끊을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면, 우리안에 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세상이 말하는 악의 고리를 끊고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가치관에 반하는 것은 멀리합니다. 예 좋은 겁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납니다. 성경과 반대로 말하는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겁니다. 이슬람 배경의 난민을 무조건 배척하고, 할랄 음식을 만드는 것을 혐오하며, 성소수자들을 정죄합니다. 예.. 그것이 신앙인으로 할수 있는 일과 안되는 일들을 구별하는 것이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가 승리의 예수님을 참으로 알고 있는 제자라면 그들을 사랑해야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임도 알기를 바랍니다. 그들처럼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벽을 쌓고 완전한 단절을 함으로 그들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그러한 말로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성경에 반하는 삶을 사는 것은 세상에 속해서 세상의 말들만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알고 있는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겁니다. 혐오와 배척이 아니라 사랑으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셨던 진리를 알게하는 유일한 방법이셨기 때문입니다.

18절과 19절의 말씀을 오늘 하루 우리가 살아가는데 힘을 줄 말씀으로 마음에 담기를 바랍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오늘 하루 만나는 이들이 예수님과 상관없어보이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라 하더러라도 우리안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먼저 사랑으로 대하는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우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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