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서의 1차 수신자는, 1절.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던 나그네들인데, 여기서 본도, 갑바도기아, 아시아는, 사도행전 2장 9절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 받았던 사람들의 출신지 12곳 가운데 3곳이죠.
아마 이 세 지역의 사람들은 베드로로부터 세례를 받고, 각기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 가정교회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볼 수 있겠죠. 그런데 이들의 생활방식이 좀 세상 사람들과는 달랐나 봅니다. 비방을 받았습니다.
그 비방은 말에만 그치질 않고 차별과 냉담한 대우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당시 네로 대박해가 로마를 넘어 제국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때였으니! 쉽지 않았겠죠.
이 때, 이들을 격려하고자, 당시 가정교회로 소아시아 여러 곳에 흩어진 나그네들인 디아스포라들을 위로하고자 쓴 편지입니다.
그런데 어렵게도 베드로는 편지의 머리말을 하나님에 대한 교리로 시작해요. 2절로 3절.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케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소망을 갖게 하셨다!
이 산소망은, 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쇠하지 않는 유업이다. 한 마디로, 너희가 지금은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며 어려움 가운데 있지만은, 너희가 받은 유업은 세상의 기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럽혀지지도 쇠하지도 않는 하늘 유업을 받은 자들이다! 라는 확신을 불어넣습니다. 소망을 불어넣어요. 한 예화가 있는데요. 어느 날 마귀가 신문에 이제까지 자기가 쓰던 모든 도구를 다 경매 처분한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하나만 팔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낙심이었다고 해요. 그 이유를 묻자 마귀는 “다른 도구는 다 없어도 나의 사업에는 문제가 없다. 이 낙심이라는 도구만 있으면 어떤 사람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합니다. 이처럼 마귀는 틈만 나면 수많은 이유를 들이대며 우리를 낙심케 만듭니다.
그러나 묵묵히 이 길을 걷다 보면 5절. 하나님의 능력의 보호하심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7절 이 믿음의 확실함 가운데 거하라! 이는 금보다 더 귀한 것이다. 그리고 요청합니다. 10절.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피기. 11절. 상고하는 것.
한 마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고 구원에 관하여 끊임없이 살피고 마음을 모으고 은혜를 기억함으로! 지금의 어려움을 버텨내라는 것이죠.
사실 우리 삶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모든 활동의 핵심은 모으는 것임을 알게 돼요. 예를 들어 춤을 추는 것은 리듬에 따라서 동작을 모으는 것이죠, 노래를 부르는 것은 화음을 따라 소리를 모으는 것이죠. 집을 짓는 것은 설계를 따라서 재료를 모으는 겁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구도를 따라서 이미지를 모으는 것이죠.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시간을 따라 추억을 모으는 거에요.
이처럼 가치 있는 것들은 모두가 모으는 과정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 베드로는 이것을 알았어요. 야~ 성도의 인생이라는 것은, 지금 겪고 있는 이 모든 사건과 어려움들을 따라서 사실 인생과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모으는 과정이야~ 깨달아지는 과정이야!라는 것이죠.
인생의 경험은 이 말씀의 흐름 속에서 모아지고 정리되지 않으면 파편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24절.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습니다. 만약 베드로전서 1장을 한줄평 한다면,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입니다.
즉, 베드로전서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심지어 내가 종말의 시간을 경험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도도히 흐르는 하나님의 흐름 속에 나의 삶을 소망 가운데 모으는 것입니다.
그 때 그 믿음과 소망의 결과로 13절 마음의 허리를 동이며 22절. 마음으로 뜨겁게 형제와 내게 주어진 이 시간들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죠.
그러니 오늘 하루도, 곰곰이 베드로전서에서 말한 이 교리들을 묵상하시고 모으심으로 다시 한 번 소망 가운데 마음의 허리를 동이시는 복된 화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