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412장)
하밥국 3장 “의인은 믿음으로”
하박국은 1장부터 호소합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의 대답은, 더욱 심한 바벨론의 횡포가 있을 것이라는 NO 였습니다. 이에 하박국은 여호와 하나님 당신의 의를 이루어달라 다시 호소하지요. 이에 2장 3절.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이어서 4절.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십니다.
과연 의인이 가진 그 믿음이 무엇이길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라고 하박국에게 말씀하셨을까요? 그 믿음이 오늘 본문인 3장 2절에 나옵니다.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함을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의 의는 우리에게 시작되질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어집니다.
대하소설 토지를 지은 소설가 박경리씨는 사랑을 가장 밀도 짙은 연민으로 보았습니다. 글 귀 중 하나입니다.
“사랑은 가장 순수하고 밀도 짙은 연민이에요. 그래요 연민 ... 불쌍한 것에 대한 연민, 허덕이고 못 먹는 것에 대한 설명 없는 아픔, 그것에 대해서 아파하는 마음이 가장 숭고한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숭고한 사랑 그 이상으로, 우리를 향한 밀도 짙은 연민과 긍휼을 지니신 분입니다. 하박국은 그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다. 그 사랑과 하나님의 속성을 알았기에 진노 중에서라도 믿음의 기도를 올렸고 그 믿음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찾아오신 이상,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그 하나님을 섬기고 이 말씀대로 사냐 안 사냐의 문제가 아닌,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인애를 알고 사느냐 모르고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주는 자비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그 하나님을 향한 삶의 흔적을 가지고 사는 자는 진노 가운데서라도 본문 17절.18절. 19절의 희망을 노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이 늘 실패하였던 것처럼 저와 성도님의 뿌리깊은 악한 본성에서 나온 모든 의도와 열정과 삶의 방향도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박국의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믿고 살아가는 이상,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경험할 수 있는 장입니다. 그래서 성도인 우리가 만나는 모든 환경과 사람들은, 복을 누리는 통로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 저와 성도님을 통해 나타내시고, 일하시고 보이십니다.
다만 우리는 하박국의 질문, "하나님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 하나님 어느 때까지 이십니까?”의 질문과 기도를 반복하여 하나님을 아는 그 자리까지 이르면 그만입니다.
때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길로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에 충돌하여 "하나님, 어째서 나와 우리 집안이 이런 일을 겪습니까?"의 기도를 경험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직장과 자녀와 그리고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통하여, 만나고 경험하고 보게 되니, 하나님과의 대화가 자연스러워 지고, 이제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하게 되는 하박국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어질 줄 믿습니다.
오늘 3장 17절에서 19절의 감사와 찬양은 하박국 선지자만의 노래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노래입니다. 때론 화음이 맞지 않고, 숨이 고르지 못하여 끝까지 부르지 못할 때가 있겠지만, 우리는 이 노래를 반드시 부르고야 말 인생들입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우리를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는 그 하나님만으로만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복된 화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