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주 예수의 강림이(196장)
이사야 57장 : 기억하시는 하나님
1절은 보시면. 이스라엘의 상태가 나옵니다. 경건한 자들이 일찍 죽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통해 재앙이 임박했음을 알아야 하는데 깨닫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의인이 그 이유가 바로 2절 이하의 말씀들입니다. 우상숭배에 몰두하느라 하나님을 잊어버릴 지경인 겁니다.
5절로 10절입니다. 너희는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가지가 무성하게 퍼진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희 정욕을 불 태웠다. 골짜기가운데서, 갈라진 바위 밑에서 너희 자식들을 죽여 이방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로 바치고 있잖느냐. 또 너는 골짜기의 개울가 바닥에서 둥글고 매끈한 돌덩이를 취하여, 그것을 네 기업으로 삼고, 그것에게 네 소망을 두면서, 그것에게 술을 붓고 제물을 바쳤다. 그러니 내가 어찌 너희의 이 같은 더러운 짓을 용납할 수 있겠니?
게다가 너는 높은 산봉우리를 찾아서, 그곳을 창녀의 침상으로 만들어 놓았어. 또 너는 네 집의 문과 문설주 뒤에 이방 우상을 모셔 두었어. 자리를 넓게 편 뒤, 옷을 다 벗어 알몸을 드러낸 채, 네가 좋아하는 자들과 마음껏 음행을 즐겼다. 그렇게 이곳저곳의 이방우상들을 찾아 사방으로 두루 돌아다녔으면 많이 지치고 피곤할 법도 하건만, 도리어 너희들은 이렇게 말하는 구나. “우상이 내게 힘을 주니, 내가 지치지 않고 새 힘이 솟는다!”
이들이 그렇게 우상을 좇아가는 삶에 대한 11절 하나님의 대답이 나옵니다. “네가 나를 경외하지 아니함은 내가 오랫동안 잠잠했기 때문이 아니냐.”
사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잠잠하심이 은혜요. 감사요. 떨림으로 다가오질 않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어설프고 우둔한 우리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을 기다리질 않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이처럼 하나님의 부재인 것 같은 공간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끝이 없는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잠잠하신 거였습니다. 이에 경외함으로 순종하며 나아가야 할 텐데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의 반응은 각자의 우상숭배를 따라 살아갔습니다.
당연하지요. 지금껏 해오던 그것을 해도 별 일이 없으니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잠잠하심으로 더욱 경외함으로 나아가야 할 우리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잠잠하시니 더욱 하나님은 안중에 없고 오직 세상살이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도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12절. "네 공의를 내가 보이리라 네가 행한 일이 네게 무익 하니라" 하나님께서 잠잠하고 계신 그때도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십니다. 잠잠하신 것은 그들과 우리의 죄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삶을 그대로 기억하셨다가 후에 '다 들추어내실'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이 '그들에게 무익하다' 는 것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잠잠히 계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우리에게는 도리어 힘이요. 안식이 되시는 이 아침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14절 이하의 말씀은 그들의 죗값대로 다 갚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간섭하시어 고쳐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18절과 19절 두 절에 거쳐 하나님께서 친히 “그를 고쳐 주리라” 강조해 말씀하십니다. 이처럼은 구원은 하나님께로만 말미암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그 기뻐하심 가운데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救贖)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만이 저와 여러분의 구주이십니다. 여전히 우리의 것을 원하고 바라며 부패하고 판단하며 무능한 우리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 인생을 다 아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쳐주실 것이라는 이 예언의 말씀이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이 되는지요. 하나님께서 죄인들인 우리를 친히 끝까지 구원해 내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면서 날마다 실패하는 우리의 본성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잠잠히 계시는 것 같아 보이시는 그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우리에게 특권입니다. 영광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이것이 우리만이 가지는 예수 안에서 허락된 진짜 복임을 아시고 오늘 하루도 즐겁고 복된 화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