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지금까지 지내온 것 (301장)
이사야 46장 “믿음의 대상”
고대 근동지방에서는 매일 같이 우상에게 음식을 바쳤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성경 여러 군데에 나오지요. 그리고 매일 같이 우상에게 옷을 입히기도 하고 심기어 매일 씻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신전에는 우상에게 제물을 바치는 사람, 옷을 입히는 사람, 씻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축제 기간이 되면 우상을 옮기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아주 겸손한 자세로 우상을 대합니다. 어리석죠. 자신들이 만든 우상인데, 오히려 자신들이 그 우상을 섬깁니다. 그러나 그 우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7절입니다.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아무리 우상에게 부르짖어도 우상은 아무런 응답도 하지 못하지요. 아무리 간청해도 우리가 겪고 있는 고난으로부터 우리를 건져 줄 수 없습니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짐이 됩니다. 1절입니다.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벨은 고유 명사가 아닙니다. 바벨론에서 ‘주님’ 할 때, 그 ‘주’에 해당 하는 말입니다. 원래 바벨론에서는 바알을 칭할 때, 이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마르둑이라는 신을 가르키는 호칭입니다. 당시 마르둑은 바벨론의 수호신이었습니다. 느보는 마르둑 신의 아들입니다. 지혜의 신입니다. 그들이 그들을 지켜줄 거라고 믿는 수호신이 오히려 짐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 이 시대에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짊어지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우상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들은 있지요. 하나님 외에 내가 밤낮으로 추구하고 있는 것, 나를 지켜줄 거라고 믿고 있는 것, 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얻고 싶은 것이 있을 겁니다. 내가 소유하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을 겁니다. 그것이 혹시 사람이 만든 것은 아닌가요? 내가 이것들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나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기꺼이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기 바랍니다. 이 말이 넋 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아님은 모두 아실 겁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평안과 안전을 누리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3]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지었으니, 내가 품고 다니겠고, 안고 다니겠고, 또 구원하여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언제까지요? 노년에 이르기까지, 백발이 되기까지, 품겠다 약속하십니다.
이렇게까지 말씀을 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 듣지를 않아요. 그러자 선지자는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9절입니다.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미래가 불투명하고 현실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약은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이끌어오신 발자취를 회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히 ‘여호와 외에 다른 하나님은 없습니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선지자들은 항상 과거를 회상하면서 미래를 예언했습니다.
또 한가지 우리를 통해 이루신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리시기 원합니다. 약속의 성취입니다. 10절입니다.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선지자는 과거에 하셨던 하나님의 선포가 다 이루어졌다고는 사실을 예로 듭니다. 이것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약속과 계획이 있으십니다. 이것을 신실하게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과거에 말씀을 이루셨듯이, 미래에도 말씀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우상에게 아무리 간절하게 외쳐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루고자 하시는 일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른 믿음위에 서기를 원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우상에 대한 겸손한 자세가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우상 앞에 절하고 섬겼습니다. 또한 우상을 향한 강력한 믿음이 있었지요. 자신들을 구해 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상에게 부르짖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지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그토록 자신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셨죠. 그러나 늘 배반하는 말 안 듣었지요. 하찮은 믿음을 가지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들을 성취해나가지 않으셨습니까? 그들의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무엇입니까? 믿음의 대상이었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실낱같은 믿음 밖에 없다할지라도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 바라보며 기도로 승리하는 우리가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제목
1. 나라를 위해서
2. 주일 예배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