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오 놀라운 구세주 (391장)
“무한하신 하나님” (욥기36장)
욥과 세 친구에 비해 비교적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사에 대해서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엘리후였지만 마지막 그의 변론인 36-37장을 보면 그 역시 자기 논리와 이성의 한계를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지식을 가졌으니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2-4절)
그러나 이후에 그가 욥에게 한 말을 보면 고난을 통하여서 일하시고 교훈하시며 깨닫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지만 그 역시 그것으로만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인 것 같습니다. 내가 알고 경험하고, 이해한 것으로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한계...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온전히, 바르게 알아가고 섬길 수 있는 길은 요원합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내수동교회 원로목사이신 박희천 목사님은 어떤 분보다도 성경을 많이 읽기로 소문난 분입니다.
이 분은 60대까지 하루에 11시간을 책상에 앉아계셨는데 그 중 2시간은 구약, 2시간은 신약 성경을 읽는데 시간을 들였다고 합니다. 65년간 성경을 670독을 했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목사님 말씀이.. 성경을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점점 더 몰라가더라는 하십니다.
하나님이 점점 수수께끼 같은 분이 되셨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하나님은 내 속에서 점점 커져만 가더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 앞에 부복하고 그 분의 영원함과 무한함과 그 통치와 영광 앞에 엎드리게 하고 순종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 자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경험을 통한 서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됨은 우리가 그 분을 알고 경험하고 느끼고 나의 왕되신 하나님 앞에 순종함으로 서게되는 우리의 삶을 통해서 나타날 것입니다.
이 아침에 기도하는 우리가, 지식적으로나 경험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아는 만큼 느끼고 고백하는 자들로, 고백하는 만큼 그 하나님앞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그 하나님을 아는 것을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내 안에 가둬두고,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무한하심 앞에, 그 하나님의 영원하심 앞에 엎드려 탄복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온전한 믿음의 반응들이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또는 허용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그것을 통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허물과 교만함을 깨닫고 죄악에서 돌이키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욥 36:10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욥 36: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이러한 것이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에게 구하시는 것이기에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회복하겠지만 끝까지 거부하면 망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1-14절)
성경도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시 119:71, 개정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특별히 욥과 같이 죄에서 돌이키는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 하나님을 더욱 분명히 알고 고백하기 위해서 그러한 고난을 허락하시는 사람들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우리는 삶의 어떤 결과와 내용을 가지고 사람들을 향해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라는 도식을 통해서 형제자매들을 정죄하지 말고, 오히려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고난이 우리 자신의 죄를 깨닫고 돌이키게 하는 것이라면 그 뜻이 이뤄지고, 우리로 하여금 분명히 하나님을 이해하고 더욱 믿음의 터 위에 굳건히 세우기 위함이라면, 그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이뤄지도록 구해야 하겠습니다.
엘리후는 26-33절에서 욥에게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크심을 창조세계를 통해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구름을 통해서 비를 만들고 내리시는 하나님의 크심은 우리가 감히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번개를 통해서 위엄과 징계와 풍족함을 베풀기도 합니다.
비에 대해서 말하며 엘리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 36:31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행사를 다 측량할 수 없습니다. 같은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이에게는 심판과 회복이, 어떤 이에게는 축복으로 다가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뛰어난 지혜와 또한 무한하신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행사를 보며 탄복하고 찬송할 뿐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기도제목 -
1. 무한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섬기는 자로 살게 하여 주십시오.
2. 고난 중에 있는 지체와 이웃들 가운데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구합니다.
3. 나눔과섬김의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싱가폴과 섬기는 선교지에 이뤄지게 하여 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