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아 하나님의 은혜로 (310장)
“하나님의 언약” (욥기35장)
엘리후는 욥이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과, 그가 고난을 받는 것을 보니 하나님앞에 죄를 범한 것이 분명하다고 하는 세 친구의 주장에 대해 계속해서 변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35장은 특별히 욥이 주장한 내용에 대한 변론입니다. 엘리후는 34장에서 욥이 주장한 내용을 가져와 그것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반론을 제시합니다.
욥이 주장한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욥 34:5, 9 “[5] 욥이 말하기를 내가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고 [9] 이르기를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 하는구나”
먼저는 34:5에서 내가 하나님앞에 의로우나 하나님은 고난가운데 나를 두심으로 내 의를 부인하셨다는 주장입니다.
두번째는 34:9에서 내가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살았지만 그것이 고난가운데 있는 자신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엘리후는 하늘 아래, 어떤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할 수 있는가? 라고 욥의 주장에 대해 반문합니다. 즉 자신의 삶을 근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자기 의를 주장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의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의나 또는 불의가 하나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어떤 내용들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하나님앞에 이렇게 살았는데 내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말하는 욥의 두 번째 주장 역시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엘리후의 주장은 옳은 부분도 있고 그른 부분도 있습니다.
옳은 것은 그의 주장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삶을 근거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만큼 선하고, 의로워야지 내가 하나님앞에 내 의로 나갈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율법의 기준에 그러한 삶은 우리 삶에 불가능이기에 누구라도 자신의 삶이나 의를 근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잘못입니다.
두 번째,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것도 필요로 하시는 분이 아니시기에 우리의 선이나 열심, 헌신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어떠한 것을 요구하는 것도 역시 잘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 없다면 그러한 삶으로 하나님 앞에 어떠한 것을 구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주장에서 간과한 것이 있다면 이러한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공의로 모든 것을 심판하시며 스스로 충분히 영광스러우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러한 죄인된 우리들과 '언약적 관계'를 맺으시고 언약 당사자인 우리의 부족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의로 그것을 덮으심으로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라 인격적이신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삶이나 행위가 아닌 오직 십자가의 사랑에 근거해, 믿음으로, 은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셨고, 그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나아갈 어떠한 의도 우리 자신에게 없음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지는 구원과 삶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만 영광돌리기를 원합니다. 혹여나 우리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모습이거나 아니면 우리 자신의 연약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모습이 있었다면 십자가 사랑으로, 십자가 그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 기도제목 -
1.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임을 알고 풍성히 누리게 하여 주십시오.
2. 대한민국이 정치, 사회, 교육 전반에 걸쳐서 바르고 정직한 가치들이 세워지고 하나되게 하여 주십시오.
3.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을 지켜주셔서 주의 나라가 그들이 선 곳에서 왕성하게 일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4. 시험중인 우리 자녀들이 수고하여 심은 것들을 기쁨으로 거두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선한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하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