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레미야애가 4장
찬양: 아버지의 마음, 세상 모든 사랑 없어
6.25전쟁이후 가장 못살던 나라 중 하나로 손 꼽혔던 한국, 우리는 얼만전엔 G7이라는 세계 7개 선진국의 모임에 초청국으로 들어갈만큼의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곳에 초청된 이유에는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고 할수 있겠지만.. 어떤 정치적 계산을 떠나서, 우리 나라가 그만큼 잘사는 나라, 풍요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입니다. 지금 이 세대밖에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보다는, 그 어려웠던 시대를 건너, 지금의 풍요로움을 누리는 시대를 사는 우리 어른들은 아마도 분명하게 느낄 것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우리 어른 세대들의 수고와 땀은 분명히 우리가 알아야 하고, 감사해야 할 부분일 것입니다. 왜 오늘 말씀가운데 이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오늘 예레미야의 4장에서 선지자가 마주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주하는 지금의 현실은 이것과는 반대였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십시요. 금은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보배로운 시온의 아들들은, 토기장이가 만든 질항아리 같이 여김이 되었다!!! 그렇게 찬란하던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의해서 잔인하게 짓밣히고, 산산히 무너지는 것을 보는 지금 선지자의 마음은 찢어질듯 아팠을 것이고, 백성들은 절망과 실의에 빠져있었을 것입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3-4절을 보면 들개도 새끼에거 젖을 주어 먹이는데, 이에 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자식에게 음식이나 물을 주지도 못하게 되어버릴 만큼 그들의 상황은 절망적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던자들이 이제는 거름더미에 앉아 있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고, 그들의 상황을 마음 깊이 묵상하고 있는데.. 오늘 그런 질문이 저에게 들려져 오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이냐. 과연 나는, 우리는 영적으로 풍요한가 아니면 빈곤한가?..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어려운 상황에 맞이한 분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 우리, 적어도 싱가폴에 살고 있는 우리는, 오늘 먹을 음식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며, 우리 자식들이 지금 먹을 것이 없어서 먹이지 못하는 상황은 아닐 것입니다. 세계인구에 10프로 만이 대학을 가고, 오늘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어도 분명 10명중 1명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그 어느때보다도 분명 풍요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과연 우리는 영적으로 풍요로운 자들인가? 아니면 겉은 풍요롭고 부요하지만, “네가 부요하다 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하지만.. 영적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네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그런 자들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젖먹이가 목말라서 혀가 입천장에 붙음이여 어린 아이들이 떡을 구하나 떼어 줄 사람이 없도다”
이런것이 오늘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세상 어느 곳엔가.. 분명히, 아니 아주 많은 곳에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오늘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 이 선지자의 애통함이 오늘 우리를 향한, 부요하나 영적으로 가난하고 궁핌해져버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애통함이 아닌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시 주님의 마음을 구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6절은 말합니다. “이제는 딸 내 백성의 죄가 소돔의 죄보다 무겁도다”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됨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죄악보다 이스라엘의 죄가 더욱 더 크고 무겁다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의 죄악이 우리로 이 영적 궁핍함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물질이 최 우선순위가 되어버리고, 나의 생각이 가장 우선순위가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되어서.. 공의와 정의가 사라지고, 나눔과 섬김이 사라져 버린 이 땅.. 소돔의 죄악보다 더 무거운 죄악이 우리로 이러한 영적 궁핍함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10절은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먹었다”라고 말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자식도 부모도 친구도 사라져 버린, 철저히 물질의 우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오늘 우리의 모습을.. 오늘 우리는 선지자의 애통함속에서, 그 비통한 노래 속에서 들어야하고 봐야만 합니다.
예수를 모르는 이들의 죄악 때문에.. 이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11절처럼 그런 이 엄청난 하나님의 진노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13절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의 결과이니…”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참다운 회개와 회복을 위해 길잡이가 되어야 할 바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그들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그들 또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거짓선지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곤핍함의 결정적인 이유임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사장과 선지자..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입니다. 오늘 이땅의 선지자와 제사장은 바로 저이고, 여러분입니다. 오늘 우리의 죄악이, 이땅을 병들게 했으며, 그 어느때보다도 부요한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으나, 지금 반대편에서는 가난한 자들의 입천장이 말라버리고, 가난으로 질병으로 죽어가는 이가 길거리에 그 시체도 거두지 못한채 널부러져 버린 그러한 시대. 영적 빈곤의 시대를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제사장은 이러한 부정한 시대를 정결하게 할 사명이 있음에도, 부정하게 되어버린 그들을 사람들이 피합니다. 오늘 이 제사장적 사명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교회가 필요없다, 예수가 필요없다! 가라!! 너희의 배만 채우는 교회는 가라!!”
그 가운데서 우리는 무엇을 바라고 있나요? 17절에 선지자는 말합니다.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오늘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전히 주님이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소망하고 있지는 않나요?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러한 애통함을 하나님은 이 성경에 기록되게 하시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요?
오늘 이 영적 빈곤함을 깨닫고 애통한 마음으로 슬피 울며 기도할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이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우리의 소망은 21-22절에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의 영적 빈곤함을 비웃으며 좋아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에돔.. 그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이 에돔의 심판은 곧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우리의 눈물을 회복해야 합니다. 울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 때문에, 교회의 모습 때문에.. 우리의 영적 빈곤함 때문에 우리는 애통해야 합니다. 이 애통함이 회복될때..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우리를 비웃는 자들앞에 서서 다시 그들로 비웃지 못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영적 풍요함을 회복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다시 무너진 이땅의 이땅의 정의와 공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함께 기도하길 원합니다.
- 오늘 우리의 영적 궁핍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애통함으로 주님께 기도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 제사장과 말씀의 선지자로 이땅을 섬겨야할 우리가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증인된 삶을 회복하게 하여주시옵소서.
- 여전히 질병과 기근과 재난으로 고통받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주여 오늘 주님이 무엇보다 필요한 자들에게 찾아가주시고, 우리가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