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예레미야 애가 5:1-22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예레미야 애가는 5장으로 구성된 짧은 책입니다. 그 중 마지막에 해당하는 다섯 번째 애가는 그 문학적 형식에 있어 앞의 애가들과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앞 장들이 각각 완전한 알파벳 두운시로 되어 있지만 5장은 히브리 알파벳 숫자만 맞추어 두운시를 모방할 뿐입니다. 길이도 다른 애가들에 비해 매우 짧습니다. 여러 문학적 유형이 뒤섞여 있는 다른 장들과 달리 자신의 색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애가가 5장입니다. 5장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공동체의 탄식시라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기도이죠.
지금 이들은 견디기 힘든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참담한 현실에 직면한 것이죠. 기업을 빼앗겼습니다. 기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곳입니다. 가나안 땅이죠.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의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땅을 잃었으니 지금 이들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선택의 역사가 끝난 것 같은 절망감에 휩싸였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개인들의 집도 모조리 이방인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사라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선택의 증거 뿐만이 아니라 개인이 생존을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집 마져도 이들의 손에서 떠나가게 된 것입니다.
더 심한 것은 자연에서 구할 수 있는 것조차 거저 받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은을 주고 물을 마시며, 값을 주고 나무들을 가져와야 했습니다. 누군가가 샛물을 독점하면서 팔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에서 그냥 얻을 수 있는 물 조차도 거저 마시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죠. 누군가 나무를 쥐고 아무나 손을 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왜 일어났습니까? 7절입니다.
[애5:7]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조상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공동체는 조상이 지은 죄를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6절의 하반절을 보면, 또 다르게 말씀을 합니다. 16절입니다.
[애5:16] 우리의 머리에서는 면류관이 떨어졌사오니 오호라 우리의 범죄 때문이니이다
지금 이들이 이런 환난과 고통 속에 있는 것이 7절에서는 조상들의 범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몇 절 지나지 않아 16절에서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우리 머리 위에서 면류관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재앙이 닥쳤다고 고백하는 것이죠.
왜 이렇게 말합니까? 상상하지도 못했던 너무나 큰 재앙이 찾아와서 정신이 혼미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기록한 기도자는 세대간의 연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각 세대간의 존재하는 죄책과 그것으로 인한 결과가 독립된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관계로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7절도 “우리의 조상”. 16절도 “우리의 머리”라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나 민족은 한 공동체로서 존재합니다. 공간적인 연대성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조상, 우리의 다음 세대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과 공동체를 이루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습니다.
물론 이것이 운명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선택에 따라 자녀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상의 죄나 조상의 결정으로 인해 후손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후손들은 조상들의 의로움과 죄악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어떠한 모양으로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가 아닌 ‘공동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책임도 분명히 있지만 공동체 일원으로서 책임을 지고, 공동체 일원으로서 고민을 하며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의 청년과 기성세대 간의 담이 생겼습니다. 세대간의 간극이 벌어진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였겠지만 특히 요즘은 더욱 심해진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서로 소통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가 왜 벌어졌습니까? 공동체의 운명과 나의 운명을 분리 시켰기 때문입니다. 나의 힘듦. 나의 상황. 나의 자리만 생각하다 보니까 공동체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웃이 어떻게 사는지, 나와 다른 세대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고민이 무엇인지… 전혀 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만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공동체’를 바라보는 자입니다. 공간적, 시간적으로 나와 연결된 공동체를 생각하며 공동체의 문제를 가지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기도하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이웃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까? 우리 청년들과 다음세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귀기울임이 있습니까? 착취를 하고, 그들의 밥그릇을 빼앗지 않았다 할지라도 공동체에 대한 연대성. 한 구성원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우리의 책임을 다 하지 못한 것입니다. 공동체를 돌아보고,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 공간적, 시간적으로 나와 연결된 공동체를 생각하며 공동체의 문제를 가지고 함께 아파하고, 고민하며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 우리 공동체에 속한 청년들과 다음세대들이 현실의 고민보다 주께서 주신 사명과 희망을 품고 달려가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