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 주 너를 지키시고 (찬송638장)
말씀 : 예레미야 44장 1~30
오늘 읽은 예레미야44장에는 세상의 법칙에 휩쓸리고 그 쪽에 완전히 동화되어 살아가는 어리석고 미련한 인생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룩과 함께 이집트로 끌려 갔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많은 유대사람들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두려워해서 이집트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도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느부갓네살의 칼날이 여기까지 미칠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와보니 이미 애굽에 자리잡고 사는 유다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미 애굽 땅에 유다 백성들이 곳곳에 산재해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이유로 어떤 경로로 어떤 식으로 이집트에 와서 살게 되었을까요? 사실 남유다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을 시작하기 전부터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불안정했습니다.
그래서 남유다 백성들 중에 눈치 빠른 사람들은 일찍 짐을 꾸려서 이집트로 내려가 버렸습니다. 나라가 망할 임박한 시점이 오고 그리고 나라가 온전히 망하게 되었을 때 그들 중에 재력이 있고 인맥이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짐을 챙겨서 이집트로 피난가버렸습니다.
여기 애굽에 내려와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으면 그 땅에 동화되어 살았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애굽 땅의 문화에 철저하게 동화되어서 아니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7절과 8절을 보십시오.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하려느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이 만든 것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너희가 가서 머물러 사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 버림을 당하여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저주와 수치 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신들에게 분향하며 섬겼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이집트에 살면서 그들이 마음 속에 다짐하고 생각한 것은 한 가지였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이 땅에서 평안히 잘 사는 것만이 그들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기회주의자였습니다. 자신들의 평안과 안락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나라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당연히 믿음을 지킬 리가 없습니다.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믿음도 버리고 하나님도 버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람들이입니다.
사람이 먹는 것만을 위해서 산다면 그것은 짐승과도 같습니다. 사람은 먹고 사는 것 때문에 부모를 버리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믿음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주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욥을 사단에게 자랑합니다. 그러자 사단이 욥이 괜히 하나님을 잘 섬기겠느냐고 반박을 합니다. 욥이 잘 먹고 잘 사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을 시험해 보라고 허용합니다. 욥은 모든 것을 다 잃었는데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을 잃어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경제적인 부요함을 이유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우리 인생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합니다.
이들은 엉뚱하게 예레미야에게 이런 변명을 합니다. 하고 있습니다. 17절과 18절을 보십시오.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이들의 뻔뻔함과 이들의 어리석음을 한번 보십시오. 하늘의 여왕이라고 하는 것은 아스다롯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스다롯을 섬겼을 때에는 풍부하고 부유하고 걱정없이 살았는데 아스다롯을 섬기는 걸 폐한 이후로 부터는 우리에게는 고난이 닥쳤다. 그래서 자신들이 애굽에 와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그러니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언제 아스다롯을 섬기는 것을 멈췄나요? 요시야 왕 때입니다. 잘 알다시피 요시야 왕은 개혁정치를 했습니다. 우상을 폐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가 되도록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소원대로 경제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섬겼던 이유를 분명하게 말합니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하나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목적으로 신앙생활해서 실패한 것인 줄 모릅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욥이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섬기므로 그가 다시 큰 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에게 복은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복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에게 다시 엄청난 부를 주셨습니다. 하지만 욥에게 신앙의 목적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어떤 목적으로 신앙생활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레미야는 너희들이 망한 것이 아스다롯을 섬기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아서 망한 것이다. 똑똑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이 잘못되어서 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힘 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정체성을 잃어버려서 힘 없이 살아갑니다.
우리가 어디에 살건 무엇을 하건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아야 된다는 사실을 오늘도 기억하고 사신다면 크게 죄 짓지 않고 크게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고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귀하고 복된 하루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1) 내가 어디서 살고 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으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소서.
2) 잠시 없어질 세상 재물을 목적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 사는 영원함을 목적으로 믿음 생활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