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장
찬송가 387장
11장에서, 예수님께서 나의 멍에는 쉽고 내짐은 가볍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쉼을 얻는다는 것이 도대체 뭐야?에 대한 말씀을 12장에서 하실 터입니다.
1절을 보시면, 그 때에~~ 로 시작하지요. 아시다시피,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언제 공격할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그 때에~~입니다.
그 때~~제자들이 밀밭을 지나가면서 이삭을 잘라 먹게 된 겁니다. 마침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본 거에요. 한 마디로 이것은, 정황상 우연이 아닌, 율법의 짐을 자신도 지고 백성들에게도 지우고 있는 이들의 죄를 드러내기 위한 사건입니다.
사실 상,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가 이삭을 따는 것은 죄가 아니었습니다. 곡식밭에 낫을 대지 말라 했지, 손으로 이삭은 따도 된다고 신명기 23장에 분명히 나옵니다. 즉, 밀밭의 이삭을 따고 안 따고의 문제가 아닌, 안식일을 문제 삼는 거에요. 니 제자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겁니다.
지금 자기들은, 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39가지의 항목을 만들어 지키고 있는데 너희는 뭐냐?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바리새인들의 공격에 대해, 8절. 예수님이 충격적인 발언을 하십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한 마디로, 야, 내 제자들이 왜 그렇게 한 줄 알아? 왜냐하면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라 그런 거야~~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안식은, 일상생활의 염려와 바쁨에 벗어나 쉬면서 충전하는 정도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더욱 큰 의미를 부여하여, 무엇인가 하지 않는 다는 것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을 통해, 안식이란 본질적으로 다른 의미인 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라 말하셨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계속 바리새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간극이 생기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행함으로, 예수님은 야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야!!로 일관하시니, 못 알아먹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로 11절과 12절.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니 /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즉, 위의 비유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다!의 단순한 예수님의 대답이 아니라, 10절에 이미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까?”의 또 하고 하지 않음에 중점을 두고 따졌기에, 이것에 대한 대답일 뿐인 겁니다.
답은 이미, 3절로 7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성소 안에서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왕권으로 먹은 거 너희들도 알지?. 이것이 성전의 법이잖아요. 그런데 나는 이 성전보다 큰 자라는 겁니다.
한 마디로, 너희들이 나를 성전보다 못한 자로 보았느냐? 나는 성전보다 큰 자야. 그리고 너희들이 안식일에 대한 율법을 가지고 나를 정죄했지? 나는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해도 상관없는 존재야. 왜냐하면 나는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이야~입니다.
그런 나는, 호세아 6장 6절을 인용하시며 이렇게 7절에 말씀하시죠.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 자체가 아니라, 안식일의 율법이 아닌, 그 제사와 안식일을 통해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아는 겁니다.
그 안식일의 주인이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그 은혜 그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 답게, 잔치의 주인 답게 안식일에 많은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안식일에 사도들을 부르셨습니다. 안식일에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안식의 행위가 우리에게도 내일 한날 풍성히 있어지기를 원하며 기도로 즐겁게 준비하시는 복된 화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