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주 없이 살 수 없네(292장)
마태복음 21장 “열매 맺는 백성”
마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장입니다.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장소입니다.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입니다. 이 곳으로 예수님께서 드디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환영받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배척을 당하십니다. 그런데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님의 신분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주인의 신분으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겁니다. 그런데 환영을 받지 못해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나귀를 타고 들어가십니다. 비교적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라고 하면서 환영합니다. 그래도 그나마 사람들이 환영을 했습니다만, 유대인의 왕이신 예수님의 환영치고는 초라했죠. 보통 왕이나 승리를 거둔 장군이 입성할때는 휘황찬란합니다. 군대가 도열해 있고요. 풍악이 울리고 깃발이 나부꼈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입성에서는 뿌연 흙먼지와 사람들의 흥분된 고함과 소동이 있었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입성치고는 너무도 단촐한 모습이었죠.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성전에 들어가시고는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죠. 사실 이 사람들은 필요했던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지역마다 화폐가 달랐습니다. 그래서 성전에 바칠 비둘기를 사기 위해서는 환전이 필요했죠. 그런데 이것들이 장사로 변질됬죠. 성전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고, 죄사함을 받는 곳입니다. 그런데 본질은 사라지고 장사하는 곳으 변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뒤엎으십니다. 물론 성전에 있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화를 냈죠.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성밖으로 가서 거기에 유하십니다. (마 21:17, 개정)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참 아이러니 아닌가요? 성전은 어떤 곳인가요?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곳에 가셨는데, 환영을 받지 못하세요. 오히려 그곳을 떠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탁자와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는 하신 일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만 기록된 예수님의 행동이 있습니다. 14절입니다. (마 21:14, 개정)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성전은 이렇게 사람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총이 만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본질을 잃어버리고 편리함과 껍데기만 남는다면, 그만큼 추한게 없습니다.
성 밖에서 나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이른 아침에 다시 성으로 들어오십니다. 들어오는 길에 한 무화과나무를 보십니다. 배고프셨어요. 그래서 열매나 있나봤더니 없어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십니다. 조금 당황스럽죠? 예수님께서 이렇게 잔인한 분이 아닌데. 물론 이 사건은 다분히 상징적이고 교훈적인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지요. 예수님께서 유대인으로 오셨고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지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지요. 그러자 그 독특한 위치를 박탈당한다는 예수님의 선언에 대한 상징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금 성전에 들어가셔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때에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옵니다. 그리고 묻지요. 23절입니다. (마 21:23, 개정)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그들의 질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당신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십니까? 누가 당신에게 그런 권위를 주셨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하십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아니면 사람으로부터냐? 이것도 같은 질문입니다. 세례 요한이 무슨 권위로 세례를 줬을까? 대제사장들이 대답하기 아주 껄끄러운 질문이죠.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로 세례를 주었다고 말하면, 너희들은 왜 세례요한을 안 따르는데? 이렇게 되어 버리리고요. 세례 요한이 자기 마음대로 세례를 주었다고 말하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하나님의 권위를 받은 사람으로 믿고 있는데, 그것이 신경이 쓰이겠죠.
쉽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대제사장들의 권위와 예수님의 권위의 충돌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생각하죠. 자신들은 권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요? 대제사장들은 성전에 거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입니까요. 예, 좋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놓친 것이 있습니다. 놓쳐서는 안 되는데 놓친 것이 있지요. 그것은 신앙의 본질입니다. 껍데기는 가지고 있는데, 알맹이는 잃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을 책망하며 말씀하십니다. (마 21:43, 개정)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열매 맺는 백성. 이 질문은 우리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아시잖아요. 우리의 신앙을 포장하는건 참 쉽잖아요. 교회 생활 몇 년 하면 누구나 신앙으로 자신을 포장할 줄 압니다. 시간만 지나면 누구나 껍데기는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무엇입니까? 내 신앙에 알맹이가 있는지, 내 신앙이 정말 열매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기도 제목
1. 유치부 일일캠프를 위해
2. 새가족환영회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