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2일] 시편 120편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85 장 – 구주를 생각만 해도
시편 120편 “응답하시는 하나님”
시편 120편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은 5절에 보시면 시인이 노래하고 있는 상황이 성전에 올라가는 상황이 아니라 메섹에 머물고 게달의 장막에 머무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메섹’과 ‘게달의 장막’은 이방의 땅, 야만의 땅, 외로움과 고립의 땅입니다. 그런데 표제어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포로로 끌려갔었던 상황을 기억하며 쓴 시인지, 아니면 포로된 상황에서 성전을 올라가기를 사모하는 상황인지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120편의 마지막 절인 7절에서도 회복을 노래한다기 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묘사하며 120편은 마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좀 멀리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표제어만을 보시면 134편까지 모두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오늘 아침에 120편부터 134편 까지 모두를 볼 수 없지만, 학자들의 견해를 빌려와서 말씀드리자면 120편부터 134편까지 하나의 흐름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향, 본향을 떠난 순례자의 길이죠. 120편부터 122편까지는 출발점의 어려움과 미리 보는 예루살렘의 영광, 123편부터 126편까지는 순례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려움, 또 그러한 상황에서도 나오는 감사, 어려운 상황 가운데 주를 향한 신뢰, 포로 귀환의 기쁨과 감격 등을 노래하구요. 127편부터 128편은 순례자의 참된 지혜로써 주의 사랑을 받는 자, 그리고 주를 경외하는 자가 누리는 복을 노래하고, 129편부터 131편은 순례 과정을 다시 회고하며 자신이 겪은 승리와 죄의 용서, 주님을 향한 신뢰를 노래하며, 132편부터 134편까지는 순례의 끝에서 돌아본 순례의 길을 노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해도 한 번 쭉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편 120편도 4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절과 2절은 ‘고난 속에서 드린 기도’라고 할 수 있구요. 3절과 4절은 ‘원수의 도전과 시인의 응전’을 노래하고 있고, 5절과 6절은 ‘나그네 생활의 고달픔에 대한 회고’라고 할 수 있으며, 마지막 7절은 평화와 전쟁의 갈등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120편은 회복으로 끝나지 않고 고난의 상황을 묘사하며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1절에 보시면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라고 노래합니다. 이 부분은 2가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134편까지 전체의 흐름에서 보자면, 그 전체의 서론과 결론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20편 안에서만 이 부분을 보자면 여호와께서 나에게 응답하도록 부르짖었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어순을 해석하는데서 나오는 차이입니다.
2절에서는 1절에서 언급한 ‘환난’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 즉 거짓말을 하며 사기를 치는 사람들 속에 고통을 받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3절과 4절은 120편의 두 번째 부분으로 원수, 대적에게 시인이 어떻게 응전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시인은 대적을 속이는 혀라고 부릅니다. 2절에서 봤듯이 속이는 혀는 시인을 둘러싸서 생명을 위협하는 대적들입니다. 대적들에게 외치는 것이죠. ‘무엇을 너에게 주며, 무엇을 너에게 더해줄까?’ 그것을 4절에서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속이는 혀에게 더할 것은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입니다. 예레미야 9장 3절에서 악인의 모습을 묘사하기를 ‘그들이 활을 당김 같이 그들의 혀를 놀려 거짓을 말하며 그들이 이 땅에서 강성하나 진실하지 아니하고’ 라고 묘사합니다. 그러나 시편 120편에서는 거짓된 입술과 혀를 향해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을 더합니다. 강한 자, 힘 있는 자가 날카로운 화살을 쏘는 것이죠. 같은 속성의 무기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모습을 우리는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거짓된 입술을 가진 자는 화살을 쏘듯 혀를 놀려대지만, 의인을 보호하고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큰 힘으로 그들을 제압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로뎀나무는 땔감으로 아주 유용한 나무이며, 한번 타오르면 쉽게 꺼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잠언 16장 27절에는 악을 꾀하는 자의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악한 자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기 또는 능력으로 활개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으로 그들을 꺾어버리실 것입니다. 그래서 악인들로 하여금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어 버리시지요.
그러나 5절에 보면 아직 시인이 처한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메섹’과 ‘게달의 장막’은 외로움과 고립의 땅입니다. 시인은 그러한 상황에 있는 것이 단적으로 ‘화’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외로움과 고립의 땅에서 시인과 함께 하였던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6절에서 볼 수 있듯이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거짓된 입술로 속이는 자들입니다.
마지막 7절에서 시인은 그들과도 화평을 원하고 있지만, 그들은 오히려 싸우고자 합니다. 거짓과 속임수로 갈등을 조장하며 싸움을 하고자 합니다.
참으로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다시 1절로 돌아가 보면 시인은 환난 중에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분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랬더니 응답하셨습니다. 120편만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현실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며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고 역사하실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때로는 하나님께서 미리 보여주시기도 하지만, 대다수,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조금도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그림과 결과는 있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기도하는 기도제목이 있을 것입니다. 또는 기도하는 것 조차 지쳐서 기도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처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바로 120편 마지막 절 7절의 모습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이 귀한 시간 포기하지 않고 한 번 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의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기도의 끈을 놓지 않도록
2. 초등부 캠프가 은혜가운데 진행되고 마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