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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세메스로 향해 올라가는 암소 (사무엘상 6장)
찬송가 : 149장 주 달려 죽은 십자가
 
서론
삼상5장에서 빼앗겼던 ‘여호와의 궤’가 드디어 6장에서 돌아온다. 오늘 6장을 언약궤의 이동을 기준으로 했을 때 두 파트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1~12절까지 언약궤가 블레셋 진영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13~21절까지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들어올 때 있었던 이야기이다. 

블레셋에서 있었던 이야기
먼저 블레셋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살펴보자.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에 있은지 7개월이 지났다. 그 동안에 블레셋은 여러 홍역을 치뤘는데, 그 중에서 쥐로 인해 발생한 사과 크기 만한 종기 전염병이였다. 후대에 학자들은 이 병이 ‘흑사병’ ‘패스트’였을 것이다고 추정한다. 그래서 블레셋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언약궤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자기들의 제사장들을 불러다가 자문을 구한다. 
그 때 블레셋의 제사장들은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라는 제안을 한다. 속건제의 제물은 5개의 종기모양의 금덩이와 5개의 쥐모양의 금덩이를 각각 준비하고 상자에 담아서 그것과 함께 여호와의 궤를 이스라엘에 돌려 보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블레셋이 그냥 곱게 언약궤를 돌려 보내 주면 될텐데… 여기서 하나님을 시험해 본다. 그냥 언약궤를 돌려보내지 않고, 아주 어려운 장애요소들을 배치해서 그래도 언약궤가 이스라엘로 돌아가는지 테스트 한 것이다. 
그 장애요소가 무엇이였는가 하면은 첫째로 ‘새로 만든 수레’를 사용하게 한 것이다. 당시의 수레는 지금 처럼 발달한 시대가 아니였기 때문에 새로 만든 수레는 아직 길이 들여지지 않아서 끌기가 더 어려웠을 것이다. 
두번째로 한번도 멍에를 메어 보지 않은 소를 선택하게 했다. 태어나자 마자 수레를 끌도록 교육하고 훈련된 소가 아니라, 한번도 수레를 끌어본 적도 없는 소를 선택하게 한 것이다. 
세번째로는 암소 한마리가 아닌 두마리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작은 상자 2개를 끌기 위해서라면 소 한마리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한번도 수레를 끌어 본적 없는 두마리가 수레를 끌게 해서 목적지로 가기 힘들게 한 것이다. 
네번째로는 젖나는 암소를 택했다는 점이다. 젖나는 암소라는 의미는 ‘새끼를 낳은지 얼마 안된 암소’라는 말이다. 엄마 소는 본능적으로 새끼 송아지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 소가 그 새끼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벧세메스로 향하는지 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번째는 누구도 이 소를 이끄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자기들 스스로 벧세메스로 향해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장애요소를 넘어서 이 암소가 벧세메스로 곧장 올라간다면 이 것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행하신 일로 알라는 것이다. 

벧세메스로 곧장 올라가는 두 암소
12절 말씀에 과연 이 두 암소는 벧세메스를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울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곧장 대로로 향해 올라갔다. 여기서 ‘울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가아’라는 단어인데… 의성어이다. 이 암소는 계속적으로 ‘가아’ ‘가아’ 하며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새끼 송아지’를 두고 가야 하기 때문이였다.  

벧세메스에서 있었던 이야기
그렇게 언약궤를 담은 수레는 벧세메스에 드디어 도착했다. 벧세메스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국경지역에 있는 곳이였고, 그곳은 레위인에게 주어진 성읍중에 하나 였다(수21:16).
벧세메스 사람들은 언약궤를 담은 수레를 보고 기뻐했다(13절). 왜 기뻐했을까요? 벧세메스 사람들이 기뻐한 이유는 하나님의 궤가 안전하게 돌아와서 순수하게 기뻐한 것이 아니였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여호와의 궤’는 부적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요술램프 처럼, 자기들을 지켜 주고, 자기들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존재로 언약궤를 생각한 것이다. 일전에 삼상4:3에서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들은 이 ‘여호와의 궤’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도구로써 부적같이 사용한바가 있다.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이 잘못된 신앙의 모습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알 수 있는가 하면은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섰을 때에 무리가 와서 수레를 부셔서 장작으로 삼고, 수레를 끌었던 암소 두마리를 잡아서 번제물로 바쳤다. 그런데 율법에 번제물로 쓸 수 있는 것은 ‘흠 없는 수소’(레1:3)였다. 율법을 제대로 모르고 자기들 마음대로 번제를 드리고 있다. 그렇다고 ‘암소’를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에 쓸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19장에 속죄제로 붉은 암송아지를 드리라 했다. 그러나 ‘암송아지’와 ‘젖나는 어미 암소’는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들의 생각하기에 옳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벧세메스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고 70명이 죽임 당하는 일을 겪는다. 이 일로 인해서 백성들을 슬피 울었고,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하며 탄식했다. 이렇게 슬피 울던 이스라엘이,, 그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는 삼상7장에 이어서 살펴 보기로 하고, 지금은 다시 돌아가서 이방나라 블레셋에서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향해 올라가는 암소를 좀 더 클로즈업해서 살펴보기 원한다.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벧세메스로 향하는 암소
슬피 울며 벧세메스로 향해 올라가는 이 암소의 모습은 1000년후에 비아돌로로사, 골고다 언덕, 십자가의 길을 힘겹게 걸어가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가아 가아’ 슬피 울던 암소 처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비명같은 소리로 절규하셨다. 
암소가 자기가 끌고온 수레를 장작으로 번제물로 바쳐졌던 것 처럼, 우리 예수님도 자기가 메고 온 그 십자가에 달려 산제물로 드려지셨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암소가 끌고 온 언약궤가 자신들을 블레셋으로 부터 지켜 줄 것이라고 여겨 기뻐했던 것 처럼, 1000년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가 자신들을 로마로 부터 해방시키고 전세계에 우뚝 선 강국으로 세울 정치적 메시아로 생각하며 그를 열광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죽으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증명하셨다.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회피하여 두고 온 새끼 송아지에게로 돌아가는 결정이 아닌, 죽음의 길, 십자가의 길, 곧 영원한 생명으로 향하는 길을 향해 곧장 올라가는 결정을 하신 것이다. 
죄로 인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결단과 적용 _ “주님 걸어가신 그 길 나도 따라 가겠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주님이 걸어 가셨던 그 길, 뒤도 돌아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그 길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묵묵하게 황소 걸음으로 걸어가셨던 주님 처럼, 조금 힘들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 앞에 놓여진 이 좁은길, 비아돌로로사 십자가의 길을 향해 끝까지 걸어가겠노라 다짐하고 결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우리 앞에 놓인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이 무엇입니까? 믿는 크리스찬으로써 선택해야 할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내가 힘들겠지만, 이 길 걸어가기 원합니다. 저도 주님이 가신 그 길, 따라가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 길 끝에서 주님을 만나서, 주님 품안에서 기쁨의 순간을 맞이 하기 원합니다. 나를 붙들어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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