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빈들에 마른 풀같이 (183장)
사도행전 13장 “반응”
안디옥교회가 있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이스라엘에 있는 교회가 아닙니다. 이방인 지역, 로마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이 안디옥교회가 선교의 전초기지 같은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파송한 것이 아닙니다. 안디옥교회에 있는 선지자와 교사들이 모여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2-3절입니다. (행 13:2-3, 개정)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교회가 모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바나바와 바울을 보냅니다. 아직까지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썼지만 편의상 바울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1차, 2차, 3차 선교여행이 시작되지요.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구브로라는 섬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될 때, 사람들은 다양하게 반응을 합니다. 좋은 반응도 있었지만, 좋지 않은 반응도 있었지요. 좋지 않은 반응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바예수였습니다. 바예수는 마술사였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말로 바꾸자면 박수무당같은 사람이죠. 그런데 7절을 보니 총독과 함께 있던 것으로 보아서 일종의 왕실 마술사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총독의 수하에서 거짓 예언을 하면서 상당한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었겠죠. 그런데 바울이 나타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그곳의 총독이 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요. 7절입니다. (행 13:7, 개정)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총독의 이름도 바울이네요. 이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그러자 마술사인 바예수는 자신의 권력과 신분에 상당한 위협을 느꼈겠죠. 그래서 총독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많이 노력합니다.
지금 바울, 바나나와 바예수를 대등하게 제가 표현한건 같은데요. 세력으로는 비교가 안 되는 상황입니다. 바예수는 총독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그 지역의 마술사이고요. 바울과 바나바는 떠돌이 전도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바예수가 복음전도를 방해하자 그를 꾸짖습니다. 11절입니다. (행 13:11, 개정)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바예수가 맹인이 됩니다. 그러자 상황은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총독이 이것을 보고 놀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사람마다 너무 다른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복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복음을 대적하다가 맹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해서 다른 반응이 전혀 다른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여행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는 비시디아 안디옥이라는 곳에 갔습니다. 그곳의 회당에 들어가 조금은 긴 설교를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구원의 역사를 쭉 소개합니다. 그리고 그 구원역사의 초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들이 예언한 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으라고 선포합니다. 38, 39절입니다. (행 13:38-39, 개정) 『[3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39]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십지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을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놀라운 선포 앞에 사람들은 두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굉장히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행 13:42, 개정) 『그들이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를 더 듣기 원했습니다. 분명히 바울의 설교를 통해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더 알기 원했겠죠. 그런데 어떤 유대인들은 적대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45절입니다. (행 13:45, 개정)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그들은 복음에 대한 놀라운 반응이 일어나자 즉시 이들을 비방하고 방해하고 나섰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유대인들을 꾸짖으며,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라고 말합니다.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너무나도 다른 반응이 나타납니다. 다른 반응이 전혀 다른 결과로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말씀에 반응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오늘 하루 아니면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겠지요. 올바른 반응을 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반응했던 안디옥교회처럼,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며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주일 예배를 위해
2. 가장총무 수련회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