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내 진정 사모하는(찬송가 88장)
말씀 : 요한복음 15:1~27
오늘 새벽에 묵상하는 요한복음 15장의 말씀은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로 아주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새로운 계명이 선포되는 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독 요한복음 중에서도 많이 읽혀지고 설교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 1절과 5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자신을 참포도나무로 비유하시고 우리들은 포도나무의 가지로 특별히 열매가 맺혀지는 가지로 비유하고 계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신가요? 혹시 여러분들은 열매에 조금더 관심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2절에서는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제거하신다고 합니다. 5절에서는 나무이신 예수님을 떠나면 아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합니다. 8절에서는 열매를 많이 맺으면 아버지가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본문을 읽으면서 열매에 초점을 맞춥니다. 나의 삶에 열매가 어떻게 맺혀지고 있는가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열매가 작거나 없다고 여기면 혹시 내가 제거된 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우리는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더 적극적으로 열매에 관심이 가지게 됩니다. 그것이 나의 제자됨의 척도로 여겨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 예수님은 우리를 가지라고 말씀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열매가 아니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가지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함께 2절과 3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 졌으니”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제거하시겠다, 그래서 열매를 맺는 가지가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겠다 말씀합니다. 문제있는 가지를 제거해서 깨끗하게 만드시겠다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면 3절이 이상해집니다. 너희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 제자들이 이미 예수님의 말씀으로 어떻게 되었다고 말합니까? 이미 깨끗하여 졌다고 말씀합니다. 가지를 잘라서 깨끗하게 만든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정결하게 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즉 성경적인 관점에서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어지는 것, 온전하여 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절은 무슨 말일까요? 제거한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이로라는 단어로 2번째 뜻이 지워버리다 없애다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첫번째 의미는 들어올리다 끌어올리다 입니다. 그렇기에 2절의 제거한다는 단어를 첫번째 의미로 해석하면 예수님께 붙어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들어올려서, 아버지께서 끌어 올려서 즉 특별히 돌보아서 문제를 해결하시고 깨끗하게 즉 온전하게 하신다는 말씀으로 보는 것이 보다 더 본문의 의미를 명확하게 해줍니다. 즉 이말씀은 결과를 물어보는 말씀이 아니라 그 과정이 어떠해야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문제있는 가지를 잘라내는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가지를 온전하게 하여서 건강하게 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지가 건강해진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일방적으로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안에 거하시고 나 역시도 예수님안에 거하는 쌍방향의 소통이 있는 것, 그것이 건강한 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쌍방향의 소통, 교제를 이렇게 명확하게 정리하여 주십니다. 15절인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우리를 종이라도 불러주신것 은혜입니다. 속된 생각으로 같은 종이라도 부유한 집에사는 종이 더 목에 힘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종과 상전은 소통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일방적인 관계이며 이 관계에서 종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건강해질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 관계를 명확하게 재정립해주십니다. 더이상 종과 주인의 관계가 아니다. 나는 너희의 친구다. 친구이기에 모든 것을 나누었으니 너희도 무엇이든지 다 나와 나눔으로 온전한 사랑을 나누자... 이것이 예수님이 그려주신 하나님 나라의 청사진입니다. 이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열매맺는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 예수님과 참사랑을 나누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그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서로 사랑함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과 서로 관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냥 경험하는 가족관계, 이웃관계에서도 사랑한다고 여기는 관계는 기쁨이 있습니다. 희생과 헌신과 섬김이 힘들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이라면 이 어려움을 서로 극복해 냅니다. 오늘 말씀에서 말하는 성도로서의 고난은 바로 그것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11절에서 말하는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5편 11절에서 다윗은 이 기쁨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아무쪼록 결과론적인 열매때문이 아닌, 주님과 우리가 사랑하는 그 관계를 통해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