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106:1-48
찬송가 286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시편 106편은 제 4권의 마지막 시편입니다. 48절이라는 긴 내용 중의 대부분(7-46)을 출애굽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설명하는데 사용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그들의 죄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어제 묵상한 105편의 내용과 정반대입니다. 105편에서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일하신 은혜의 역사로 등장합니다. 그들의 현실은 여전히 어렵고 위태로웠으며 미래는 불투명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되돌아 보며 역사의 주인은 그들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106편에서의 이스라엘 역사는 그들이 주님의 은총을 거역한 범죄의 역사입니다. 106편을 묵상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이스라엘 범죄를 살필 수가 있는 것이죠.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가장 먼저 7절입니다.
[시106: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백성. 그들은 노예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기적과 같은 도우심으로 이집트에서 탈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탈출의 과정만 기적과 같았습니까? 광야에서 체험했던 수많은 기적. 무엇보다 홍해를 갈라서 바다를 건너가게 하신 사건은 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죽음 앞에 선 그들을 또 한 번 구출 해 내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조상들은 그것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거역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죽이려고 여기로 불러냈냐며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서 다시 애굽 사람들을 섬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8절입니다.
[시106: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큰 범죄를 짓는 자들이었지만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주님을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였죠. 주의 은혜를 금방 잊었습니다.
또 다시 이들의 범죄는 이어졌습니다. 13-14절입니다.
[시106:13-14] 1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본문에서 말하는 “가르침”이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광야에서 먹이실 계획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위해 만나와 메추라기를 준비해 놓으셨는데 그것을 알려 줄 시간도 없이 불평을 늘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그들이 요구한 것. 즉 먹을 것을 풍족히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범죄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세우신 것에 대해 반역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숭배했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담을 수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꾼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치명적인 모욕입니다. 애굽과 홍해에서 기적을 베푸시고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완전히 잊어버린 결과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완전히 멸하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노를 돌이키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범죄는 그칠 줄 모르고 계속됩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 10명의 불신앙적 보고를 듣고 거기에 마음이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반역했습니다. 기쁨의 땅에 들어가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뿐입니까? 발람의 꾀로 인해 브올에서 바알을 숭배하고 모압 여인들과 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죽은 자에게 바친 음식을 먹음으로 인해서 하나님만 예배해야 할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신. 살아 있지 않은 죽은 신을 경배하는 자들로 전략했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므리바 반역 사건도 언급합니다. 백성들의 불평과 거역으로 인해서 모세가 함부로 이스라엘에게 말한 것을 말씀합니다. 모세의 분노로 인하여 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이들은 광야에서 수 많은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을 끝까지 이끌어 주셨습니다. 심지어 약속의 땅을 믿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죠. 그러나 이들의 범죄는 그 곳에서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하신 이방 민족들을 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방인들을 따라 이방신과 우상들을 섬겼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남편인 하나님을 배반한 음란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지 않을 수가 없으셨습니다. 주님의 노가 맹렬하게 타 올랐습니다. 그들을 이방 나라의 손에 넘기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크신 인자하심을 따라서 그들을 살려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반역의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잊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그들을 안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의 고통을 돌아보셨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심판의 뜻을 돌이켜 회복과 구원의 기쁨을 맛 보게 하신 것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좋지 못한 일입니다. 아주 불행한 일이죠.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저지를 범죄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베푸신 용서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5:20 하반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가 많은 곳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도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나도 나를 용서할 수 없을만큼의 무거운 죄를 짓고 난 후에 비로소 주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고, 넓고, 높은지를 경험한다는 것이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에 노출되고,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우리를 버려 두시는 것이 아니라 죄가 더한 그 곳에서 은혜를 더욱 넘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자들이 높이 들린 놋뱀을 바라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은혜의 주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안으시고, 당신의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성부 하나님. 우리를 이끌어 가시며 죄의 길이 아닌 주의 길을 걷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믿으며 힘차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침을 믿습니다. 죄 가운데 놓여져 있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