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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찬송가 570장)

말씀 : 신명기 31:1~30


오늘 새벽 우리가 함께 묵상하는 신명기 31장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1세대 지도자 모세에서 2세대의 지도자 여호수아로 그 지위가 옮겨지는 것을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1절에서 8절까지의 말씀을 보시면 여호수아가 하나님께 직접 명령을 받는 여호수아 1장의 내용과 같은 내용을 만나게 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초를 닦았다고 한다면 여호수아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역사속에 실제적으로 실현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며 격려하십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하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분명 가나안 족속은 강합니다. 이미 역사속에서 강성함과 번영을 누리고 있던 족속입니다. 그러니 아직 오합지졸인 이스라엘이 보기에 두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내가 함께하겠고 버리지 아니하겠다 고 위로하시며 격려하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에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주님이 함께하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구나! 담대함을 가지고 한발한발 걸어가면 되는구나! 이렇게 믿고 나아갑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역사의 실제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매번 강해보이는 가나안과 같은 장벽에 가로막힐때가 많고, 그래서 주저 않고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분명 이말씀이 약속으로 주어졌는데, 실제의 삶에서는 승리를 하지 못하니, 결국 다 나의 믿음이 약한것이구나.. 내가 10명의 정탐꾼처럼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상황을 보고 주저앚아버린것이구나… 하고 우리의 삶을 해석해 버립니다. 왜냐하면 분명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하셨고,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14절 이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6절은 분명 하나님이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그 약속을 하나님이 어기시는 것 같은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예언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16절에서 18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 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는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말씀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릴것임을 알고 계십니다. 아니 알고 계실뿐 아니라 그렇게 반드시 될것이라는 뉘앙스도 풍깁니다. 그리고 이것때문에 반드시 이스라엘에 재앙과 환란이 임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분명 6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으신다고 하셨는데요, 지금은 이스라엘을 버리겠다 보이지 않을 것이다 숨기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이 재앙과 환난을 만날것이다 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분명 먼저 이스라엘을 떠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때문에 떠나실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데, 우리가 잘못해서, 우리가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이 떠나시고 그로인해 재앙과 환난이 오게되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성경전체에서 말하는 끝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모습과는 상이합니다. 게다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확정적으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또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좀 더 묵상할 이유가 생기는 겁니다.

먼저 우리의 전제를 수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하실것이니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고 오늘 본문을 봅니다. 하지만 3절과 4절의 말씀을 보시면 이미 하나님은 앞서 가셨고, 하나님이 그 답을 이미 다 찾아놓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기에 그러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미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하게하시고 그와 비슷한 답을 우리가 미리 경험하게 하십니다. 4절말씀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이미 이스라엘은 경험했습니다. 물론 가나안에 비하면 작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앞에 계실때 어떤 결과가 주어지는지는 명확하게 알수 있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전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인이되셔서 통치하는 나라이며, 그 하나님에게 모든 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단 한가지만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이 12절과 13절의 말씀입니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곧 백성의 남녀와 어린이와 네 성읍 안에 거류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에게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 거주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에게 듣고 네 하나님 여호아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말씀을 듣고 지키고 배우는 것을 1순위로 삼으라는 겁니다. 종교적 열심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14절 이후의 말씀을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떠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방신을 따를때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사라졌을때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은 자신을 숨기신다는 표현을 하셨음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숨긴다는 말의 원어 싸타르는 감춘다 숨긴다는 뜻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한가지의 뜻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가까와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숨으셨다는 오늘 말씀의 표현은 사라지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눈에는 안보이지만 가까이에는 계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과 함께하고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잊어버렸을때, 하나님 나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고, 떠나게 되어 결국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믿게되어진다는 말을 하고 싶으신 것입니다. 좀더 해석하면 율법적이고 종교적인 열심만 남게되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이 말씀이 저주가 아닌 중요한 이유는 가까이 계시기에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을 찾고자 하면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곳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함께 26절의 말씀을 읽어보실까요?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하라.”

하나님을 경외할수 있는 말씀이 여호와의 언약궤 옆에 있습니다. 이말은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곳에 항상 있다는 말입니다. 제사라고 하는 율법적인 행동으로는 확인이 안됩니다. 하나님께 전심으로 나아갈때에만 확인할수 있는 곳에 이 말씀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새벽에 이 사실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여 주옵소서. 답을 이미 가지고 계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평생을 유지하게 하여 주옵소서. 혹시나 주님이 숨어계신다고 여겨지는 환경에 있는 성도가 있으시다면, 그 주님이 안계신것이 아니라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심을 믿음의 눈을 떠 보게하시고, 그 주님을 봄으로 하나님의 복을 차지하는 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라고 기도함으로 주님의 함께하심을 누리는 이 새벽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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