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
제목 : 순종
앞선 디모데의 경우에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인 유니게가 모두 유대인이었기에, 유대교 교육과 할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디도는 받지 않았죠. 바울이 예루살렘 총회에 가서 몸의 행위의 할례보다 마음의 할례가 중요하다 주장할 때도 동행했지만 무할례의 상태였습니다. 결국 바울이 뜻이 관철이 됩니다.
그 때서부터 이방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고도 기독교인이 될 수 있었는데, 그 최초의 시점에 디도가 서 있었습니다.
그가 그레데 섬에 순회 사역자는 아니고 지역교회 개념의 담당자로 파견 받았던 것이죠. 그런데 그레데 섬의 형편이 굉장히 낙담적이었습니다. 이에 1장에서는, 지도자의 자격과 양육 2장에서는 사람을 대할 때 어떠한 자세로 대하여야 하는지를 오늘은, 정리격인 셈이죠.
그 첫 구절에,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사실, 권위에 대한 복종과 순종의 구조는 지금이든 1세기경의 교회 상황이든, 원시사회든 상관없이 모든 사회에 필수적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한국의 회사나 공장 근로자들 못잖게 원시 부족에게도 존재했다 해요. 하지만은, 토착민들은 권위자들 모두를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었죠. 1세기경의 그레데 섬의 상황도 이러했을 수 있었겠죠.
반면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요. 비인격적인 권위에 복종할 것을 강요받기에 직함 등 함축하는 추상적 계급에 반응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실례로, 우리 아이들도 가족의 보호에서 벗어나자마자, 학교라는 제도적 권위 체계로 옮겨지죠. 구체적인 교과 과정과 조직의 틀 안에서 행동하는 법을 자연스레 배웁니다.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든 사회 체제가 권위에 대한 복종을 몸에 배이게 만든다는 점에 이견을 제기하기는 쉽질 않습니다. 이 사회 구조 안에 교회도 함께 서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무시무시한 조직논리에 동화되지 않는 선에서의 순종과 복종입니다.
만약 조직 논리에 동화된 복종이라면, 타인의 행위에 대해서조차 ‘권위자를 대신해’ 조직 논리를 강요하는 것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죠. 내부 고발자에 대한 그 조직 내의 비난도 한 예가 되겠죠. 그럴 때에 한 개인의 도덕적 기준은 ‘권위자의 가치’에 맞춰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 집단에 한 번 적응을 못했으면 그리고 권위자의 마음에 들지 못했으면 평생 꼬리표 달고 사는 겁니다. 심지어 구원의 영역까지 건드는 이단들이 있어요. 한마디로, 집단의 권위가 개인의 자아를 압도한 경우이죠. 과연 오늘 디도서의 복종과 순종이 그것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는 한 번 곱씹을 만 하죠.
디도서는 앞서, 2장에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가벼운 것이 되지 않도록 지도자들에게 품위를 잃지 말고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먼저!!! 요청했음을 기억해야겠죠.
그렇게 2절. 아무도 비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합니다.
이는 3절,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였다. 순종하지 않았던 자다. 즉, 자신의 위치를 명확하게 인지함으로 출발하라! 누군가 ‘선행의 출발은 악행의 인지’라고 말했듯이, 그만큼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 어려움을 역설로 표현한 것이겠죠.
내가 누구였는지를 은혜 안에 보는 자는, 고린도전서 14장 40절.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합니다”
여기서 본문 정황상 품위란 마음 속에서 어떤 것을 꺼내고 어떤 것을 꺼내지 말아야 할지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상대방에게 해야 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간극으로 틀어지곤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죠. 하나님도 우리의 모든 면이 마음에 들지는 않으실 거에요. 그러나 시간을 두고 사랑하시고 기다리시지요.
이 원리가 나라고 부정될 근거는 없습니다. 삼위 하나님의 교류 속에 때론 격하시지만, 늘 우리와 품위 있게 교제하심을 기억하시고, 바울도 끝으로 디도를 돕고자 동역자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서로를 위해 준비케 하듯이, 오늘 하루도 우리와 만나는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 행복의 요소와 좋은 일 힘쓰기를 서로 배우시는 복된 화요일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기도제목
1. 유스부 단기선교를 위해
2. 북미 정상회담 가운데 정의와 평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