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8장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찬송가 : 452장 “내 모든 소원 기도의 제목”
고린도전서 8장은 우상의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교훈을 우리에게 줍니다. 고린도는 큰 도시였고 무역과 문화의 중심 도시였기 때문에 신전과 신들도 많은 신들의 도시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신들을 섬기고 모시기 위한 축제가 도시 안에서 수시로 벌어졌습니다. 축제에는 축제 음식이 빠지지 않지요. 신들을 위한 축제가 끝나고 나면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이 고린도 도시가 가진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남은 음식은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지요. 신들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은 당시에 자연스러운 문화였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같이 먹고 나누는 것을 통해서 신의 은총을 받고 보호를 받는다고 그들은 믿었습니다. 그런데 신전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신전에서 신들을 위해 봉사하던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를 가지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더 이상 신전의 축제에 참여하고 그곳의 음식을 먹는 일은 없었지만, 시장에 나온 남은 음식을 먹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지요.
축제 음식을 먹는 것이 옳을 까요? 아니면 먹지 않는 것이 옳을 까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다고 했는데, 축제 음식을 믿음으로 받고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아니면 그래도 신들에게 바쳐진 음식인데 그 목적과 과정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먹지 말아야 할까요? 무엇이 옳은 것인가요? 신앙생활 하면서 먹는 문제는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습니다. 제가 호주 멜번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지낸 적이 있는데, 같이 살았던 하우스메이트 3명이 있었고, 호주 청년들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들을 비롯한 우리 4명 모두 기독교인들이어서, 우리는 다른 기독교 청년들을 초대해서 매주 수요일바다 바이블 스터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바이블 스터디 하기 전에 한 친구가 집에서 맥주를 꺼내더니 먹을 사람 손들라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는 정말 신실하고 제가 본받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의 기독 청년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바이블 스터디 하기 전에 맥주를 꺼내든 것도 충격이었지만, 이 질문을 들은 그 자리에 있던 거의 모든 청년들이 맥주를 마시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맥주 마시면서 성경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6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고 신앙을 배운 보수적인 저의 입장에서는 거의 혁명적인 사건과도 같았습니다. 간단하게 먹는 문제를 보더라도 서로가 생각하는 기준과 입장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식으로 먹는 문제를 대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8장은 우상의 음식을 먹어야 된다, 먹지 말아야 한다를 말하기에 앞서 이렇게 말합니다. 1절 말씀을 먼저 보겠습니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우리가 우상의 제물 먹는 것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이 있는 줄 알지만, 우리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상대를 판단하기에 앞서서 상대를 향한 사랑이 존재하는지를 먼저 묻습니다. 사랑이 없는 인생의 경륜, 지식과 경험은 자기 자신을 교만하게 만들어서 상대방을 사랑 없는 말과 행동으로 넘어지게 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말하고 주장하기에 앞서서, 우리의 행동과 말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합니다.
4-6절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 외에 다른 우상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앙 지식입니다. 4절에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고 했으며, 6절에서도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셔서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 기준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이 명확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7절 말씀을 보면 이 지식이 모든 사람에게 있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신앙의 정도가 다르다는 것이지요. 이제 막 믿기 시작한 사람에게 있어서 30년 믿은 사람의 신앙의 기준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사람이나 먹지 않는 사람이나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담겨 있는가가 첫 번째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8절에서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있는 신앙 양심의 자유가 먹는 문제로 인해서 믿음 약한 자들을 넘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9절에서 말해줍니다. 우리는 형제를 위해서 음식을 먹지 않을 수 있어야 하고, 형제를 위해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형제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적은 우상을 위해 사용된 축제 음식에 있지 않고,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유무에 있습니다. 바울은 13절에 결론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경험과 지식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 있는 형제와 자매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경험과 지식을 기꺼이 희생하고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1절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시면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초를 두고 있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라기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사랑으로 가정을 세워가고 교회와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와 가정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
사랑으로 덕을 세워가는 하루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