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기이한 일
(이사야 29장)
오늘 본문은 ‘유다를 향한 책망의 말씀과 또 구원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1절에 보시면 ‘슬프다 아리엘이여’라고 탄식하며 선지자는 말씀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아리엘’이라는 말은 에스겔 43장 15절과 16절에서 ‘번제단’을 표현할 때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아리엘’을 하나님을 향한 제사가 드려지던 ‘예루살렘’을 지칭하는 말로 쓰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루살렘을 향해 ‘아리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문맥적 분위기를 봤을 때,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아련한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상숭배로 범죄한(4절) 유다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과 또한 그들을 향해서 여전히 소망을 잃지 않으시고, 구원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통해서 유다를 향한 아련하고 탄식 섞인 하나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1~5절은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6~9절은 아리엘을 치는 열방의 무리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유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유다를 책망하시지만 그런 유다를 공격하고 조롱하는 나라를 하나님께서 그대로 되갚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유다를 정복한 바벨론을 비롯해서 그 후로 생겨나게될 바사와 헬라, 로마제국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제압하고 공격하는 나라는 하나님이 가만 두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10~13절은 또 다시 유다의 죄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13절이 유다의 죄의 결론인데요. 13절을 다같이 보겠습니다.
[사29:13]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어디선가 보았던 익숙한 구절이죠? 바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5장에서 외식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시는 말씀에서 인용하셨던 구절입니다. 이사야가 언급하는 유다의 죄가 다 해결되지 않고 예수님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남방 유다의 죄에서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에게로 연결되는 저들의 죄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거부한 것입니다. 유다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너희가 바벨론에 의해 망한다는 말씀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을 거짓말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평안하다 평안하다 너희에게 아무런 재앙이 미치지 않을것이다’하는 거짓선지자들의 말만 들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였지만, 그들은 구약의 율법은 통채로 외울정도로 지식적으로는 아는게 많았지만..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야가 예수님이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수님을 향한 메시야 예언은 감추어진 신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눈과 귀를 닫으신 것입니다. 왜 저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눈과 귀가 닫혀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는가! 하나님이 하실 기이한 일을 착각하고 오인했던 것입니다.
14절에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기이한 일은 유대인의 왕이 나와서 온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는 정치적인 메시야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획하신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 신비 중에 가장 신비로운 일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하나님의 비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15~17절에는 “지음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이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피조물이 창조주를 부정한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는데, 그 중심 이슈는 바로 ‘안식일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고 그 제자들도 안식일에 밀 이삭을 비벼 먹고 그냥 대 놓고 안식일을 범하고 다니는 모습이 저들의 눈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이죠?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 그 말은 ‘내가 창조주다’는 말입니다. 안식일이 무슨 날이죠? 창조주 하나님께서 6일동안 창조하시고 7째날을 거룩하다 하시고 쉬신 날입니다. 그 날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안식일을 직접 만드신 분이신거예요. 그런데 그런 예수님께 대하여 왜 안식일을 범하느냐고 말하는 것은 저들이 무지해도 얼마나 무지한 것입니까?
18~19절에 그래서 이 비밀을 ‘못 듣는 사람’ ‘맹인’ ‘겸손한 자’ ‘가난한 자’ 이 세상에서 소외된 약한 자들에게 보여지고 들려지고 깨닫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마지막 20~24절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스라엘은 육적이스라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시고자 하시는 이스라엘은 영적이스라엘, 즉 하나님 나라의 회복, 이 시대의 교회의 회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책망 들었던 유다 백성의 모습이 아니라, 그리고 예수님으로 부터 책망을 들었던 유대인들과 같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께 무슨 은혜를 구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들을 내가 온전히 깨닫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 사건과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사건과 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사건 그리고 승천하셔서 마지막 날에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이 놀랍고 신비로운 일들을.. 단순히 나의 머리로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게 하시고, 이 머리로 아는 지식이 우리의 삶으로 까지 연결되어서 우리 주님 걸어가신 그 길을 나도 걸어가길 소망합니다. 내가 항상 주를 기억하고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찬양하는 인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가는 우리 나눔과섬김의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보게 하소서.
- 주님 다시 오심이 우리에게 봉한 말씀이 아니라 활짝 열려진 은혜의 복음으로 와 닿게 하시고, 주님 다시오심을 고대하는 믿음이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