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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사야 22장

찬양: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주 없이 살 수 없네


열방을 향한 심판을 선포해오던 선지자가 22장에 이르자 예루살렘에 대한 멸망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도시 예루살렘, 그렇게 사랑했던 그들이었기에 더욱 더 혹독한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왜 그들에게 이 혹독한 심판이 선포되고 있을까요?


2절에 보면, 그들은 즐겁게 외치고 소란스럽게 떠들고 있었습니다. 시끌벅적했고, 흥청망청이었습니다. 왜 그들이 그랬는가를 보면, 3절의 말씀처럼, 히스기야왕때, 하나님께서 앗수르의 침공을 막아주시고, 그들은 위기에서 구원을 얻는 기적과 같은 체험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의 기쁨이었습니다. 사실 그들은 그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은혜 앞에 자신들의 죄악됨을 깨닫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와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구원받을 만했기 때문에 아니라, 3절의 말씀처럼 철저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힘으로 위기를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것은 잠시의 기쁨이 되었고, 그날에 그들은 모두 1절의 말씀처럼 결국 그 재난앞에 지붕위로 도망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일이 일어난 것일가? 우리는 계속해서 이사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보는것처럼, 그리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아모스와 요엘 선지자의 책에도 볼 수 있듯이, 정의와 공의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한손에는 제사에 드려지는 제물의 피를, 한 손에는 약한자들의 억울한 피가 뭍혀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지만, 그들의 삶에서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신앙은 형식적이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철저히 무시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더욱 더 문제는 그들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위하기 보다는, 자신들의 부와 영화만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의 심판을 선포하는 이사야의 마음은 너무나 아팠습니다. 4절에 보듯이 그는 어떤 위로도 받기를 거절합니다. 선지자의 마음은 곧 하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을 그는 느꼈던 것입니다. 


5-8절은 보여줍니다. 그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앗수르와 바벨론을 이끌고 오실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완전히 포위될 것임을… 그날, 그곳에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소란과 공포만이 남게 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벨론과 앗수르는 심판의 도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심판의 주도자가 앗수르나 바벨론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라는 것을, 이사야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9-10절. 그들은 방어진을 점검합니다. 병기고의 무기들을 검열합니다. 성벽의 약한 지점을 찾아 보수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었지요. 예루살렘은 높은 산위에 사방이 높은 산으로 막혀있는 천예의 요새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단점은 물이었는데, 성밖의 기혼샘에서 물을 끌어와야만 했습니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러나 전쟁때 그 물길을 막으면, 성안에 물이 공급되지 않는것이 문제였지요. 그래서 히스기야가 어떻게 합니까? 저수지를 만듭니다. 물 길이 막혔을때를 대비해서 식수 공급을 위한 저수지를 만든 것입니다. 적들이 다시 쳐들어올 것에 대한 그들 나름대로의 만만의 준비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11절. “그러나 너희가 이런 재앙을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준비만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이었는가? 바로 이 모든 심판이 누구에게서부터 오며 왜 오는지를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오늘 그들을 이땅으로 부르신 하나님, 그들을 선택하시고, 구원하시고, 그들의 왕이신 하나님! 이 심판에서 앗수르는, 바벨론은 그저 그 심판자의 손에 들린, 심판의 회초리였을 뿐이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진짜 심판자가 누구신지를 깨달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눈물로 호소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라 외쳤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바로 12절, 만군의 여호와 즉 이 모든 전쟁, 심판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앞에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것, 그들의 하나님께 돌아오는것. 그들이 어떠한 죄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를 철저하게 깨닫고 고백하며 하나님앞에 돌아오는 것. 그것이 그들이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13절에 “오늘을 즐기가 먹고 마시자!! 어차피 내일이면 죽을 테니까….” 

내일이 없는 사람들, 오늘 그저 육체적 만족과 기쁨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 정말 마치 오늘이 전부인것처럼 사는 교만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 그들을 향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사하지 못하리라”


그리고는 14절에는 구체적으로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셉나입니다. 셉나 히스기야의 오른팔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가 갑자기 등장할까요? 그가 “국고를 맡은 자” 였기 때문입니다. 즉 실제적인 유다의 실세요 책임자였던 것이고, 대표적으로 지도자들의 죄악됨을 보여주는 인물이었습니다. “네가 여기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는 사실 유다와 상관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애굽출신으로 앗수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친 애굽 정책을 폈던 히스기야로부터 정략적으로 등용된 인물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그는 자신의 권력을 사용하여, 오직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힘과 권력을 사용합니다. 그가 그토록 만들기 원했던 묘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썩어 없어질 허무한 것을 보여주지요. 결국 그의 끝은 그의 인생의 목적처럼 여겼던 화려한 묘실도 아니고, 광막한 곳에 던져지게 됩니다. 자기를 의지하며,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인생의 결국을 우리는 셉나를 통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대신하여 엘리아김을 세우겠다고 하십니다. 그에게 주신 말씀 가운데 우리가 잘 아는 말씀이 그를 향해 선포됩니다. 22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자가 없으리라’


이 말씀을 신약에 예수님께서 누구를 향해 인용하여 말씀하시지요? 바로 베드로입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랴 하느냐”라고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 고백을 듣고 하나님께서 바로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너에게 다윗의 집의 열쇠를 줄것인데, 너가 열면 닫을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으리라”


교회는 바로 그 고백위에 서 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에게도 이 열쇠가 주어진 것입니다. 엄청난 권세이지요.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견고하게 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 집의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후손과 족속이 되는 각 작은 그릇과 큰 그릇,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라는 약속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엘리아김 역시도 그 인간의 욕심과 탐심가운데 자유롭지 못하고, 그 심판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영원히 설 수 없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오늘 우리의 삶 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그의 자녀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모든 심판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미워하셔서가 아니라, 그들을 돌이키게 하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해 당하는 모든 아픔들은 분명 하나님의 뜻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든 피해보기 위해 재정적으로 준비를 하고 하는 노력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한번뿐인 인생.. 오늘을 즐겨라 라고 하며 매력적으로 쿨하게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셉나처럼 자기의 권력과 지위를 사용하여 세운 그것들은 결국 묘지일 뿐이고, 그것마저도 아무 소용없이 광야에 던져짐을 당하게 되지요. 왜냐하면 이 심판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주님께 돌아오는, 철저히 회개와 돌이킴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 이사야의 마음을 회복할 때입니다. 그 어떤 위로도 하지 말라고 했던, 그 이사야의 마음으로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죄로 병든 이땅을 바라보며, 울고 회개하며 주님앞에 돌아갈 때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그 다윗의 열쇠, 그건 내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주님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우리에게 그것을 주시며 이땅을 위해 중보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라고 주신 것들을 주를 위해 쓰지 않는다면, 그것이 단단해 보이고, 영원할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것을 뽑으실 것이고, 빼앗으실 것입니다. 


그 주님앞에 겸손히 나아갑시다. 주여 오늘 주님 없이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이 어려움속에 내가 준비하면 이 모든 것을 피할 수 있을것이라 여겼던 교만함과 이기심을 회게 하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주님만이 우리의 참된 왕이 되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 함께 말씀을 기억하고, 이 기도제목들을 가지고 주님앞에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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