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23:1-18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인간의 마음에 자리잡은 무서운 적 중의 하나가 바로 ‘교만’입니다. 교만이라는 녀석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내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덮어버려 정상적인 판단조차 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렇다 보니 하나님을 대항하여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주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지 않습니다. 자기 멋대로 사는 것을 자유로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결국은 어떻게 됩니까? 잠언 16:18입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교만의 끝은 패망이라는 것입니다. 교만이 나를 이끌어 파멸의 길로 가기 때문에 그 끝은 망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중심인 두로와 시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고대 사회에서 문명이 가장 발달한 국가였습니다. 목축과 농경이 전부였던 시대에 이들은 무역을 했던 나라들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서로 인접한 항구도시로서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서 해상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었고, 많은 부를 쌓았던 국가들입니다.
그러나 두로가 하루 아침에 몰락을 했습니다. 한 순간에 완전히 멸망을 당한 것입니다. 누가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9절입니다.
[사23:9]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것을 정하신 것이라 모든 누리던 영화를 욕되게 하시며 세상의 모든 교만하던 자가 멸시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직접 이들을 멸망시키신 것입니다. 그렇게 큰 영화를 누리던 것을 오히려 욕되고, 수치스럽게 만드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그 교만하고, 오만한 것을 꺾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진행하셨다는 것이죠.
결국 잠언의 말씀처럼 교만이 이들을 무너지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의 끝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사야에 등장하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바벨론, 모압, 유다, 아람, 북이스라엘, 애굽, 앗수르 그리고 바벨론까지… 이들이 패망하고 몰락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만때문입니다. 교만한 이들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이들을 몰락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나 두로의 운명은 그렇게 끝이나는 것은 아닙니다. 15절입니다.
[사23:15] 그 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 같이 칠십 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 년이 찬 후에 두로는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
일단 70년간 잊어버린 채로 두시겠다고 합니다. 두 세대 정도를 그대로 흘러보내겠다는 말씀입니다. 교만했던 모습을 꺾어내고 새로운 두로를 만들겠다는 말씀입니다.
두로가 기생의 노래 같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이들의 무역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음란한 내용의 노래들처럼 두로는 열방들을 감언이설로 꾀어 무역을 행한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래서 16절에서도 “잊어버린 바 되었던 너 음녀여.”라고 부르시고, 17절에서 “그가 다시 값을 받고 지면에 있는 열방과 음란을 행할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70년간 잊혀진 두로가 또다시 국제 해상무역을 통해 부흥할 것을 예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멸하게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을 다시 회복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멸망 전의 두로와 멸망의 후의 두로는 다른 모습입니다. 돈의 사용이 달라집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합니까? 18절입니다.
[사23:18] 그 무역한 것과 이익을 거룩히 여호와께 돌리고 간직하거나 쌓아 두지 아니하리니 그 무역한 것이 여호와 앞에 사는 자가 배불리 먹을 양식, 잘 입을 옷감이 되리라
멸망하기 전 두로는 많은 부를 축적하여 부귀영화를 누리던 자들이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콧대가 높아질만큼 높아졌습니다. 교만하여 앞을 볼 수 없었던 자들이었죠. 하나님을 생각도 하지 못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멸망과 부흥을 경험한 그들은 이제 무역한 것과 그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이익을 여호와께 돌릴 것이라고 합니다. 간직하거나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잘 입을 수 있도록 나눌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16:13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든지, 돈을 쫓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죠. 멸망 전의 두로는 돈을 쫓아 살아갔던 자들입니다. 그렇다 보니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습니다. 교만하게 되었고,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70년이 지나 회복된 두로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똑 같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부유해 지지만 그것을 쌓아두고 자신의 유익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를 따르는 자들과 나누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결국 주를 따르냐? 돈을 쫓느냐?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직업과 돈을 버는 방식을 가지고 있어도 돈을 쫓는 자는 그것을 통해 멸망을 당하지만, 주를 따르는 자는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는 없습니다. 재물을 붙잡고, 교만한 마음을 안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든지, 재물을 쫓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무엇을 따라 달려가십니까? 같은 삶을 살아도 하나님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재물을 따르는 자는 그 끝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와 동행하며,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나의 에너지와 재물과 재능을 사용하는 오늘 우리의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습니다. 재물을 붙잡고 있는 나의 마음을 내려놓고, 신실하게 하나님만 따르는 내 삶이 되게 하소서.
- 교만함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내 삶 속에서 교만한 모습이 있는지를 점검하게 하시고 겸손하게 주를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