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 : 442장
∙ 말씀 : 창세기 5장
우리는 창세기 5장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굉장히 오래 살았다. 장수 했다는 사실에 주목을 합니다. 부럽다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5장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들의 마지막은 죽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셋이 나은 아들의 이름이 ‘에노스’입니다. 에노스는 ‘아담’과 같은 의미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먼지 같은 존재’, 연약한 존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오래 산 것처럼 보여도 인간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반복적으로 죽음의 기록만 있는 족보에 주목할만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에녹입니다.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죽음을 보지 않은 사람이 또 있지요?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불리워 올라간 이유를 우리가 추측하기 쉽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습니까?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의 선지자와 싸워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한 사람입니다. 그 뿐 아니라 당시 가장 사악한 왕 아합의 불의에 맞서 진리를 선포한 사람입니다. 이런 영웅적인 믿음의 행위로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에 올라간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에녹은 그런 일을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22절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하나님과 동행했다. 죄를 범한 인간을 에덴에서 쫓아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과 함께 지내기를 원하십니다. 인간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은 기꺼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작은 신음도 들어주시고, 오늘 우리의 삶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뻐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소원을 가지십시오. 하나님과 동행한다고 해서 수도사적인 삶을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를 낳았다는 것은 일상생활했다는 것입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일을 하려고 애를 썼던 에녹의 모습이 그려집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않겠습니다. 내 욕심이라면 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 채우실 줄 믿고, 내 자존심을 내려 놓습니다. 명품도 많고, 안목의 정욕이 얼마나 많습니까? 가지고 싶은 것이 많습니까? 하나님으로 만족합니다. 이런 것들이 에녹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절제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습니다. 에녹이 믿음이 좋아서 그 아들이 장수의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에녹은 365세를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므두셀라는 969세 세배 가까이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싶습니까? 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을 원할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죽는날 노아의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멸망의 날이 온 것입니다.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세상이 끝난다는 뜻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창을 던지는 자입니다. 전쟁에서 창을 던지는 사람이 죽으면 그 전쟁은 끝납니다. 에녹은 아마 므두셀라를 낳을 때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너의 아들이 죽으면 세상이 끝난다. 에녹에게 하루 하루는 종말을 준비하는 삶이었을 것입니다. 므두셀라가 태어나자마자 그 다음 날 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날로 종말입니다. 우리는 오래 살겠다고 노년을 너무 많이 준비합니다. 먹을 것을 쌓고, 입을 것을 쌓고,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잊어 버립니다. 또는 종말이 없을 것 같고, 영원히 살 것 같아서 계속 세상 것을 모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기도한다. 예배한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속에 살아갑니다. 절제하지 못합니다. 내려놓을 것을 내려 놓지 못합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죽음을 극복하는 삶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전히 이 복된 길을 주셨습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기도제목]
주님과 동행하는 평생이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