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마태복음 10장 – 묵상과 기도
찬송가 : 94 장 –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마태복음 10장 “복음을 전하는 자들”
마태복음은 10장은 예수님의 5대 강화, 설교 중에서 두 번째 부분입니다. 첫 번째가 바로 5장부터 7장에 이르는 산상수훈이지요. 예수님의 두 번째 설교의 1차 청중은 제자들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들에게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죠.
앞의 장에서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병자를 고치는 것은 그저 ‘예수님이 대단하고 기적을 베푸는 사람이다’정도만 보여주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자를 고치는 것은 구약에서 앞으로 올 메시야에 대한 표징이었죠. 병자를 고치셨던 것은 예수님께서 병자와 약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또 그 분이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주시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렇게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은 9장 마지막 절에 추수한 일꾼들에 대해서 언급하셨죠. 이렇게 불쌍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할 일꾼들 말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10장에서 12제자들을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12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이란 뜻이죠. 그래서 10장에서는 그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가져야할 자세와 마음가짐, 그리고 처한 상황 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사도’라는 직분은 바울 사도로 끝났다고 말하지만, 우리 모두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서 10장의 말씀은 우리 삶 가운데에도 큰 도전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가라고 하십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복을 받은 백성이지요.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로서 큰 축복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물론 결국에는 우리도 그 큰 축복을 받게 되었지요. 7절에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면서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모든 것을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걸어가는 그 길은 이미 하나님께 받은 것을 나누어 주는 길이기 때문에 그 수고로 인하여 이득을 취하지 말고,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을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무조건 굶어가며 스스로 고난을 당하는 고행의 길은 아닙니다. 10절 후반부에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은 것이 마땅하다고 하죠. 이것은 복음을 전하는 그 길에 복음을 듣는 이로 하여금 사도들의 필요를 돕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사도들이 어떤 성에 들어가면 한 집을 택하여 그 곳에 복을 빌고, 생활하도록 하셨죠. 그러나 그들을 영접하지 않는 집들은 발에 먼지까지 털어버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영접하지 않는 것은 사도들의 육적인 필요를 공급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는 그 길이 결코 평탄치 않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리는 양을 먹는 포식자인데, 사도들을 파송하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같은 것이라고 하시죠. 그렇게 이리와 같은 사람들은 제자들을 미워하며 제판정이나 왕들에게 넘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18절에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될 것이라고 하죠.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까지 전해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무엇을 말해야할지 걱정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계실 성령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해주실지 알려주시기 때문이죠.
이 길은 고난의 길이지만 끝까지 견디는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고난이 구원의 조건이라는 말은 아니지만, 복음을 전하는 고난의 길 끝에는 반드시 구원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이죠. 그러나 어떠한 박해에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정말로 두려워해야할 분을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28절에 너희를 박해하는 그들이 너희의 목숨을 빼앗을지라도, 영혼까지는 해할 수 없다. 오히려 몸과 영혼 모두 지옥에 보내실 수 있는 그 분, 여호와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진짜로 무서워하라기보다는, 제자들을 해치려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죠.
예수님은 평화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 예수님을 전하는 사도들에게는 항상 평화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34절에 예수님은 오히려 검을 주러 왔다고 하시죠. 그리고 가족 사이에 불화가 있을 것이며, 심지어 가족들이 원수가 될 것이라고 하죠. 그리고 예수님보다 가족들을 더 사랑하는 자들은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가족의 불필요성이나 무용론을 얘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전반에서 가족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예수님도 죽으시기 전에 자신의 제자 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하죠. 여기서는 그 시대 정황 상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받아야할 시선과 반대가 크기 때문에, 그 반대와 비난이 설령 가족들에게서 올지라도, 그러한 상황 속에서 흔들림 없이 복음 전하는 자로서의 위치를 지켜야할 것을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것이죠. 그때와 지금은 복음의 전파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음의 진수를 잃어버려서는 안되지만, 아직까지 복음을 모르는 가족들도 우리의 전도의 대상자임을 잊지 않아야 하죠.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일꾼으로서 합당하게 받을 것을 받고, 고난도 받고 박해도 받고, 여러 아픔을 겪을 수 있지만, 기억해야할 것은 자신들을 보내신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의 이름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영접하는 자들은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죠. 그렇게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들은 그들의 상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편의를 찾기 위해, 부를 쌓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들은 복음의 전하는 이들의 모습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쉽습니다. 진리는 거짓과 섞일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굳이 우리가 먼저 앞서서 갈등을 조장할 필요는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뱀 같이 지혜로와야 하죠. 그런데 그 지혜를 가지고 세상에 섞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지만 비둘기 같이 순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고, 우리의 입술을 통해, 삶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내어쫓는 은사를 가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외침은 누구나 할 수 있죠.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은 특별한 은사를 받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모든 이들이 누리는 삶이며, 누려야 하는 삷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그 시간을 준비해야하는 우리임을 입술로 전하고 삶으로 전하는 것이죠. 천국이 가까이 왔음을, 천국을 향해 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되, 비둘기 같은 순결함으로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 뱀 같은 지혜로, 비둘기 같은 순결함으로 오늘을 살아낼 수 있기를..
- 천국이 가까이 옴을 전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