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나의 영원하신 기업" (찬송가 435장)
"답정너 신앙을 버리고" (욥 13장)
사단의 시험으로 완전히 망한 욥을 위로하기 위해 세명의 친구들, 그들은 나름의 신앙으로 욥을 권면합니다. 당시 세계관에서 갑작스러운 고난은 분명 신의 저주로 믿었기에 친구들은 욥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빌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이들이 요즘 유행하는 말로 '답정너'라는 것입니다. 답정너라는 뜻은 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하면 돼라는 뜻입니다. 즉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답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질문자가 정해놓은 답을 찾아서 말하라는 것입니다. 욥과 대화하는 세친구가 이렇습니다. 결과를 보니 욥은 분명한 죄인이라고 답을 정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신학적인 명제들을 가지고와서 욥이 죄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의 대답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욥의 진짜 마음이 어떠한지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답은 이미 세친구들이 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욥도 답정너인 친구들의 생각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과 2절에 나도 안다고 말합니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하나님께 죄를 범해 저주받은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3절에서는 자신의 죄가 있다면 알게해달라고도 기도하고, 26절에서는 이미 해결되었던 젊었을때에 지은 죄때문입니까?라고 기도하며 자신의 인생에 있었던 죄를 꺼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욥은 결과를 보고 거기에서 답을 찾지 않습니다. 욥은 그 결과가 있게한 자기 자신을 먼저 봅니다. 그리고 자기 내면에 대한 성찰을 합니다. 그모습이 14절과 15절 16절입니다.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 경건하지 않는 자는 그 앞에 이르지 못하나니 이것이 나의 구원이 되리라.”
14절의 말씀은 내가 뭐하러 스스로 생명을 위험에 던지겠느냐는 뜻입니다. 15절의 내용과 연결해 생각해보면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만을 이야기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은 16절의 말처럼 나는 경건하다는 것입니다.
욥은 스스로의 삶을 되집어 보았을때 하나님앞에 경건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이 아닙니다. 18절과 19절의 말씀처럼 객관적인 사실이 욥의 경건을 보장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주가 있을 만큼의 악이 그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욥은 악을 찾아 고백하라는 세친구들의 요구대로 답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하나님께 그의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나아갑니다. 21절과 22절에서 욥은 자신이 겪는 아픔을 거두어 가달라는 것과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달라는 것을 기도합니다. 두가지의 요청같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간절한 요청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육과 영의 문제가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 결과를 보고 즉 답을 정해놓고 그 답을 해석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답정너의 신앙이 아니라, 먼저 나의 내면을 먼저 바라보고, 그 진심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임재를 구함으로 고난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는 욥처럼 우리도 매일의 삶속에서 임재하는 하나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 기도제목 -
1.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믿음으로 삶을 해석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2. 교육훈련중에 있는 성도들을 붙들어 주시고, 인격적인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3. SBC와 학생들을 사랑하여 주셔서, 동남아 지역 복음화를 위해 쓰임받는 학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