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445장)
시편 97편 "여호와의 통치"
시편 97편은 온 세상에 대한 여호와의 의로운 통치를 기쁨으로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통치로 인해서 누리는 은혜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 시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1-6절은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8-12절은 여호와의 통치로 인해 이스라엘이 기쁨으로 노래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두 부분의 중간에 있는 7절은 중심절로서의 기능을 합니다. 쉽게 표현하면, 여호와의 통치를 기뻐하라는 선포의 부분 그리고 여호와의 통치로 인한 기쁨을 찬양하는 시편입니다. 특별히 시편 97편에서는 ‘기뻐하다’라는 단어를 좀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시작절인 1절에도 등장하고 마지막 절인 12절에도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즉 ‘기뻐하다’라는 말은 시편 97편 전체를 감싸며 여호와의 통치로 인한 기쁨을 노래합니다.
먼저 첫 부분인 1-6절을 살펴보겠습니다. 1절에 보면 ‘땅’과 ‘허다한 섬’에게 하나님의 통치를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선포합니다. 멀리 배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허다한 섬은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을 가리킵니다. 6절에서는 ‘모든 백성’이라는 말로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배를 통한 이스라엘의 선포와 증언은 궁극적으로 열방의 복음화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통치를 기뻐해야 할까요? 그 이유에 대해서 2-6절에서 자세하게 설명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구름과 흑암을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힘에 비유합니다. 사람들은 강렬한 햇빛과 햇볕을 가리는 흑암과 구름을 보면서 역시 신비함과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떠올립니다. 동시에 심판에 대한 경외감을 느낍니다.
다음으로 시인은 왕이신 하나님의 보좌를 묘사하면서,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는 ‘의와 공평’이라고 노래합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별히 3-5절이 묘사하듯이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통해서 그 통치의 영광은 나타납니다. 세상에는 불의하게 신음하고 고통당하는 나라들 혹은 그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억압받는 자들은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의로운 통치를 보면서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4절을 보니 번개가 온 세계에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다고 말합니다. 산들이 온 땅의 주 앞에서 떠는 두려운 심판의 상황을 묘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왕권을 부정하고 그 분의 통치를 거부하는 모든 세력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앞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지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6절에서는, 악한 대적을 소멸하시고 세우실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아름다운 하늘의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광활한 세계를 햇빛과 공기로 감싸는 하늘을 보면서 모든 백성들은 온 세상을 ‘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지요. 결국 2-6절은 하늘에 드러난 계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의로운 왕권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7절은 중심절로서 일종의 전환점과도 같습니다. “조각한 신상을 섬기고 허무한 것으로 자랑하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97:7)”. 앞부분에서 말한 온 세상의 왕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고, 헛된 신들을 믿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너희 신들아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라고 권면합니다.
이어지는 8-12절은 여호와의 통치를 기뻐하는 부분입니다. 8절을 보니 시온은 여호와의 심판을 듣고 즐거워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신들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사역 속에서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나라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시온은 온 세상이 선포하는 여호와의 심판을 듣고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온 세상에 드러난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열방을 향한 심판을 보며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지존하심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온 땅의 위에 지존’하시 지극히 높이 계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신들을 찾거나 인간 왕들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10-12절에서는 왕이신 여호와를 사랑하는 의인들을 향하여 격려하고 권면하는 말로 시를 마무리합니다. 여호와가 온 세상의 왕이심을 믿고, 그 분의 의로운 통치로 인한 구원을 경험한 자들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충성하고 헌신하는 성도입니다. 의인이며 마음이 정직한 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뜻을 거스르는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정말로 악을 미워하는 의인들은 하나님께서는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고 풍성한 은혜의 빛을 비춰주십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찬양했던 여호와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의 본질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그분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 97편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의로운 통치를 우리는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통치는 의롭기 보다는 불의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꼭 국가적인 통치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소소한 상황과 현실에서도 의로운 통치보다는 불의한 통치를 더 쉽게 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통치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느낌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은 의로운 통치자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온 세상이 기뻐하고 하늘과 땅에 전시된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의해서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선포되었지요.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사랑과 의로운 통치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온 세상을 의롭게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사는 자들이고, 이 세상과 개인적인 삶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를 찬양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창조 이래로 계속되어 왔음에도 이 세상은 여전히 헛된 것을 쫓으며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죄악이 가득하고 악인들이 득세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승리할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론 당장 눈앞에 보이는 불의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온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설령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궁극적인 통치를 신뢰하며 기뻐하고 즐거운 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도 하나님의 통치 아래 온전히 우리의 삶을 맡기기 원합니다.
1. 우리 교회의 주인도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며 우리 교회가 온전히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도록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기 원합니다.
2. 4월 여러 사회복지부 사역이 있습니다. 봉사를 통해서 세상 가운데 작은 소망과 사랑의 빛을 비추게 하시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통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사역이 되도록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