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 내 갈길 멀고 밤은 깊은데 (379장)
누가복음 7장 “기쁨의 소식”
예수님을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셨거든요. 너희를 구원할 메시아가 보내주겠다. 유대인들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다면 이방인들은 어땠을까요? 아무도 안 기다리죠. 예수님이 누구인줄 알고 기다립니까? 메시아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누가 오는지,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그냥 살던대로 살아가던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한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이 백부장에게는 아끼는 종이 있었죠. 그런데 그 종이 병들어 죽게 생겼습니다. 백부장인데, 종을 살리기 위해서 이거저거 해봤겠죠. 그런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나봐요. 그러던 중에 이 백부장이 예수님이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2절입니다. (눅 7:3, 개정)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님께 갑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종을 고쳐주기를 간구합니다. 이 백부장이 참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면, 유대의 장로들이 이 백부장을 칭찬합니다. 이 백부장이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서 회당도 지어졌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서 로마사람들을 좋아히기 힘든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로마가 유대를 힘으로 지배하고 있어요. 더구나 백부장의 로마군대의 군인이에요. 그런데도 장로들이 예수님께 백부장을 도와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백부장의 집으로 가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나죠. (눅 7:6, 개정)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이 말은 예수님을 향한 백부장의 굉장한 배려이자 믿음입니다. 왜 배려이냐면,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같이 어울리거나 이방인의 집을 방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인 예수님을 배려해서 굳이 내 집에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향한 굉장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군인이 나도 상관이 명령하면 따르는데, 예수님이 명령하면 내 하인의 병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부장의 말을 전해들은 예수님은 오히려 놀라십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중에도서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고 칭찬하십니다. 아이러니하죠. 메시아를 그토록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정작 예수님을 만나자 시큰둥했는데, 메시아가 누군지도 몰랐던 이방인 백부장은 예수님을 잘 믿고 신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백부장에게만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이번에는 한 과부의 삶에 찾아가십니다. 나인이라는 성에 갔을 때, 예수님께서는 한 장례행렬을 보십니다. 한 청년이 죽었습니다. 그 청년의 어머니는 과부입니다. 그리고 이 죽은 청년은 이 어머니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이 어머니가 얼마나 비통할지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죽은 청년을 살리십니다. 이 어머니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세상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다가, 기적같은 기쁨을 누리지 않았겠습니까?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두려워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사방에 퍼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세례 요한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잘 압니다. 본인이 내 뒤에 메시아가 온다고 예언을 했고요. 실제로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께 세례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가 기다리던 분임을 세례 요한 스스로 증거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다시 묻습니다. 당신이 오실 그 분이 맞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하나요? 약간 의아하죠? 왜 갑자기 세례 요한에게 이러한 의심이 생겼을까요?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대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3장 17절에서 세례요한은 메시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눅 3:17, 개정)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어떻습니까? 강한 심판자의 모습이지요? 그런데 아직까지 예수님에 대해서 본인이 기대하던 모습이 다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혼란스러웠겠죠? 그래서 다시 물어봅니다.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그 분이 맞습니까? 우리는 저마다 하나님에 대해 기대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분명히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세요. 우리가 너무도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사가 안 일어나는 것 같아요. 하나님께서 왜 이러실까? 혼란스럽죠.
예수님께서 그 질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절입니다. (눅 7:22, 개정)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님의 답변이 뭡니까? 봐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봐라. 이렇게 답변을 하시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그분을 신뢰하기 원합니다. 또한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역사는 인내하며 소망중에 기대하기를 바랍니다.
기도 제목
1. 유년부 일일캠프를 위해서
2. 주일예배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