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욥기 7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Jun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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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져도 하나님께 넘어지자
(욥기 7장)
찬송가 :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극심한 고통 중의 욥
욥은 계속해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며 울부 짖습니다. 6장 10절에서 욥이 고통 속에서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음’으로 그 속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고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했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7장에 와서 또 다시 욥은 절망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현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이 욥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살충동
오늘 본문은 처음 부터 끝가지 욥의 ‘자살 충동’입니다. 2절 말씀 보시면 “종은 저녁 그늘을 바라고, 품꾼은 그 삯을 기다린다”고 말하죠. 빨리 이 땅에서의 날들이 끝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밤에 잠이 들면 이 생이 이대로 끝나고 내일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5절 “내 마음이 뼈를 깍는 고통을 겪느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라” - 고통 보다 죽는게 낫다는 것입니다.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차라리 죽고 싶다’…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 이런 분들은 일제치하 때에 일본순사들의 고문을 당하면서 끝까지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고문을 당할 때 차라리 빨리 죽고 싶은 마음이 더 들지 않았겠어요? 지금 욥은 하루 하루 살아있는 것 자체가 고문이였습니다. 
16절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 나의 생명을 이제 그만 놓아 달라! 편안하게 죽게 내버려 두라! 고함치고 있습니다. ‘죽지 못해 산다’ 이 말은 욥에게는 농담이 아닌 진심이였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 처음 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욥은 ‘죽고 싶다’ ‘죽지 못해 산다’ ‘죽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 같은 말들’을 늘어 놓습니다.

그런데 죽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가 욥기 7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러나 욥은 죽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매 순간 ‘자살 충동’을 느꼈어요. 고통이 너무 극심해서 실제로 죽는게 더 나은 선택 같습니다. 요즘에는 ‘안락사’라는 것도 있잖아요. 고통 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편안하게 죽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욥은 죽음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욥은 끝까지 자신의 생명, 목숨, 영혼의 생명을 포기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사람이 스스로 살고 죽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고 반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 박탈권’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살인’만이 아니라 ‘자살’도 하나님 앞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죄로 간주 됩니다. 욥은 그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자살충동’을 경험했지만 ‘자살’을 선택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고 싶을만큼 힘든 상황 가운데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는가!// 오늘 본문에서는 ‘욥의 시선의 변화’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욥의 시선 변화
오늘 욥기 7장은 두 파트로 나뉘어 집니다. 1~10절까지와 11~21절까지입니다. 1~10절은 모두 ‘욥의 독백’ ‘욥의 혼잣말’입니다. 자기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하는 독백인데…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는 욥의 시선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미친사람 처럼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욥이 11절에서 그의 시선이 이동 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11절에서 ‘그런즉’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하는데 문자 기호가 표기되는 영어 성경에서는 이 뒤로는 모두 큰 따옴표로 표기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깐 11~21절까지는 욥이 누군가에게 직접 말하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욥이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한글성경에서는 ‘주께서’ 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넣음으로 욥의 시선이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원문 성경에서는 ‘주께서’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없습니다. 단지 동사에 그 주어를 포함시켜서 드러내고 있고, ‘하나님’을 지칭하는 직접적인 단어는 생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원문 성경에서도 욥이 11~21절까지 사용하는 동사들은 모두 ‘2인칭 단수 동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지금 욥은 하나님께 직접 자신의 심정을 토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욥은 자기 자신의 고통과 자신의 힘든 상황에서 눈을 돌려 이제는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심정을 토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욥에게서 배워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넘어져도 하나님을 향해 넘어지는 법입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되는 모두는 욥과 같이 절망스러운 상황을 만나 넘어졌을 때, 하나님을 향해 넘어진 자들이였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한 사람을 꼽자면 ‘엘리야’입니다. 열왕기상 19장 4절 말씀입니다. 
[왕상19: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엘리야는 이세벨의 위협으로 쫓기기는 상황에서.. 두려워 로뎀나무 아래 숨고, 그곳에서 자살충동을 느겼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엘리야는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돌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거예요.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절규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자신을 향해 달려와 절퍼덕 엎드려 절규하는 엘리야를 일으켜 다시 소생케 하십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할수만 있거든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절규하며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 죽기 보다 싫은 거예요.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기쁘게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도 절망의 죽음의 순간에 끊임없이 자신의 고통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결단과 적용
그렇습니다. 때로 우리의 인생에 절망의 순간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감당이 안되는 문제를 만나 허덕일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고 싶다’ ‘살 힘이 없다’ ‘사라지고 싶다’ 하는 자포자기 하는 심정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때에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넘어져도 하나님께 넘어지자’ ‘하나님 앞에 가서 자포자기 하자’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쏟아내고, 우리의 심정을 하나님 앞에 토로할 때,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의로운 오른 손을 내밀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독수리 날개쳐 올라감 같은 새힘을 더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힘, 성령의 능력으로 힘든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해 나아가시는 우리 모든 나눔과섬김의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인생의 고통과 위기의 순간을 만날 때 넘어져도 하나님을 향해 넘어지는 법을 배우게 하소서. 
2. 피곤하여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을 바라 봄으로 새힘을 얻고 회복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