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욥기 6장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May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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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이의 말씀으로
(욥기 6장)

내용관찰
욥기 5장에서 엘리바스는 욥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을 합니다. 이에대한 욥의 대답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엘리바스는 ‘고통은 죄의 결과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거다’ 라는 말로 욥을 위로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정말 큰 힘든 일을 겪고 있는데, 누군가 와서 ‘고통은 너를 성장시켜 줄거야’라고 말한다면 그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될까요? 작은 고통이라면 웃으면서 들어줄 여유가 있겠지만, 욥과 같이 자식들이 모두 죽고 자신도 죽을 것 같은 고통 가운데 있는 상황에서 ‘고통은 널 더 성숙하게 해줄거야’라는 말은 귀에 들리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욥의 고통의 정도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욥이 당하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그 단서가 몇가지 있는데, 5-7절에서 욥의 말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는 욥의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피부에 난 종기가 입안에 까지 생겨난 탓인지 모르지만, 먹어도 그 맛을 느낄 수 없는 그런 상황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1-13절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인지 기력이 없어.. 겨우 겨우 살아있는 욥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고통에 대한 욥의 생각
욥은 이러한 극심한 고통이 어디서 부터 비롯되었다고 고백하는가 하면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부터 비롯되었다고 말합니다. 4절에 보면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라고 탄식하고, 9절에는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하나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자신에게 이런 고난이 닥칠 수 없음이 분명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라는 말입니다. 욥에게는 이것이 더 고통스러운 사실이였습니다. 내가 의지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고난과 고통을 허용하셨다는 사실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친구들의 충고
이런 상황에서 친구들이 찾아와서 하는 충고나 조언 또는 위로의 말은 오히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기름을 퍼붓는 것과도 같은거예요. 그래서 욥은 그런 친구들을 21-24절에 ‘변덕스러운 개울물과 같다’고 꼬집어요. 그들의 옳은 말이 1도 위로가 안되었던 것입니다. 25절에서 오히려 그 ‘옳은 말’이 욥을 더욱 고통스럽게 했다고 말합니다.

욥은 어떻게 이 고난을 이겨나가는가?
그렇다면 욥은 힘들고 어려운 이 고난을 어떻게 이겨 나가는가! 이겨나간다기 보다는 ‘버틴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버텨내는 자, 살아 남는자가 곧 이긴자입니다. 욥은 이 극심한 상황을 어떻게 버텨내고 있습니까? 
10절 말씀에서 그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욥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고 고통 가운데서 기뻐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위로’라는 단어는 낙심될 때 위로를 주는 원천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친구들이 하는 ‘옳은 말’은 오히려 더 고통을 가중시켰는데, 욥에게 그 고통 속에서 기쁨을 주고 위로를 주는 것이 무엇이였느냐!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 ‘거룩하신 이의 말씀’이 욥에게 고통 중에 위로가 되고 기쁨을 주었다는 말입니다. 똑같은 표현을 시편119편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119:50절 말씀입니다. 
50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말씀이 고난중에 위로가 되고, 말씀이 자신을 죽음 가운데서 끌어 올려 살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시편기자는 이어서 119편 143절에는 이런 고백을 합니다. 
143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여기서 ‘환난’을 뜻하는 히브리어 단어 ‘싸르’는 양쪽에서 대적과 원수, 환난과 고통이 밀려와서 좁은 협곡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고, ‘우환’을 뜻하는 ‘마쪼크’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마음의 극심한 스트레스’ ‘극심한 우울증’ ‘공황장애’를 뜻하는 말입니다. 
시인은 이와같은 진퇴양난의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이 그랬고 시편119편의 시인도 그러했듯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부터 공급된다구요? ‘거룩하신 이의 말씀’ ‘주의 말씀’ ‘주의 계명’이 우리로 하여금 환난 중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위안을 얻는 힘을 준다는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말씀을 경험하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말씀을 경험한다는 말은 기록된 성경 말씀 속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이고, 진리를 깨닫는 것은 곧 말씀의 밭에서 진주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시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기록된 말씀 속에서 발견하여 내 삶에 적용할 때..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고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욥은 일시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잊게 해줄 마취제와 같은 ‘인간적인 위로’나 ‘세상 적인 쾌락’을 추구하지 않았어요. 그는 영원히 멸하지 않을 진리되신 말씀을 붙들고 버텼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은 마치 고통의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돗단배를 의지하고 간신히 떠 있는것 같은 그런 느낌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시요 진리이시요 위로자 되신! 말씀되신 주님을 붙들고.. 끝까지 버텨내어 승리하는.. 우리 모든 나눔과섬김의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찾아올 때 내 영의 생명을 포기 하지 않는 믿음이 내안에 있게 하시고, 욥과 같이 끝까지 버텨 내는 영성이 내 안에 있게 하소서. 
  2.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고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경험하는 은혜가 있게 하소서.